시민사회

초고령사회 생존 전략…'의료·요양·주거' 3박자 통합 시급

 현대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이 기존의 일시적 위험 대응에서 벗어나 상시적인 돌봄 체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과거의 복지가 실업이나 질병 같은 단기적 위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초고령화와 가족 구조의 해체로 인한 구조적 돌봄 공백을 메우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었다. 1인 가구의 보편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과거 가족이 전담하던 돌봄의 기능을 마비시켰고, 이는 결국 국가와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공적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특히 치료 중심의 의료 체계가 삶의 질을 유지하는 돌봄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사회적 자원의 재배분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국가로, 2050년경에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고령층에 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단순히 노인 인구의 증가를 넘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후기 고령자의 폭증을 의미한다. 치매나 노인성 질환을 앓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장기요양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국가 재정의 막대한 부담으로 이어져, 현재의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체계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의료와 요양을 연계한 통합 지원법을 시행하며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체계 구축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현재의 시스템은 노인 계층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으며,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 등 다양한 돌봄 수요를 포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소득 수준에 따른 제한은 완화되었으나, 정작 핵심인 방문 의료 서비스나 주거 지원책은 기존 제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돌봄의 핵심은 결국 거주지 중심의 밀착형 플랫폼 구축에 있다. 영국이나 일본, 독일 등은 주민들이 생활하는 동네 단위에 전문 인력이 상주하는 돌봄 거점을 마련하고, 의료와 복지를 하나의 팀으로 묶어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시군구 단위의 행정 중심 전달체계에 머물러 있어, 실제 도움이 필요한 개개인의 욕구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전문적인 케어 매니저 양성과 읍면동 단위의 실질적인 서비스 실행 조직이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힌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효율적인 운영 방식의 개선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한국의 돌봄 관련 예산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며, 그마저도 부처별로 칸막이가 쳐져 있어 중복 투입이나 사각지대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영국의 '더 나은 돌봄 기금'처럼 보건과 복지 예산을 하나로 통합해 지역 특성에 맞게 집행할 수 있는 유연한 재정 구조가 필요하다. 또한 민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공급 구조를 개선하고, 공공의 조정 능력을 강화해 지역 간 의료 및 돌봄 격차를 해소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결국 미래 돌봄의 성패는 동네가 가진 연결의 힘을 얼마나 복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돌봄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을 넘어 이웃 간의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험을 조기에 발견하고, 파편화된 자원을 유기적으로 잇는 '동네 복지 레짐'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과감한 재정 지원과 법적 토대를 마련하고, 지방정부는 현장 맞춤형 플랫폼을 운영하며, 민간과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다원적 협력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 한국형 통합 돌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암살자(들), 스크린은 1위, 극장 밖은 전쟁

영화 ‘암살자(들)’이 스크린 안팎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극장 안에서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지만, 극장 밖에서는 역사 왜곡 논란과 정치권 공방, 배우 자택 앞 시위, 굿즈 사태까지 겹치며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암살자(들)’은 전날인 5일 전체 박스오피스 1위와 전체 좌석판매율 1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논란이 흥행에 찬물을 끼얹기는커녕, 개천절 연휴 관객들의 관심을 더 끌어올린 모양새다.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 동안 이 영화를 본 관객은 52만 명을 넘어섰다. 22일 연속 한국영화 예매율 1위도 이어갔다. 개봉 3주 차에 접어들었지만 흥행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누적 관객 수는 240만 명을 돌파했다.‘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벌어진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민감한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룬 만큼 개봉 전후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문제는 논쟁이 작품 해석을 넘어 출연 배우 개인을 향한 압박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4일 일부 보수 성향 단체 회원들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진·출연진의 사과를 요구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유해진이 모델로 활동 중인 브랜드를 향한 불매 움직임과 광고 교체 요구도 이어졌다.배우 측은 강경 대응에 나섰다. 유해진의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는 “배우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신변을 위협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일체의 행위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 행위로부터 소속 배우의 권익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논란은 극장가로도 옮겨붙었다. 메가박스는 최근 ‘암살자(들)’ 오리지널 티켓 굿즈를 무상 제공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일부 누리꾼들은 티켓 디자인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연상시키고, 시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패륜 굿즈’라는 비판까지 나왔다.메가박스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메가박스 측은 “일정이 촉박해 담당자들이 영화를 미리 보지 못한 상태에서 배급 및 제작사와 협의해 굿즈를 제작했다”며 “역사적 비극과 참혹한 사건이 지닌 엄중함과 무게를 깊이 헤아리지 못해 불편함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남은 굿즈 수량은 전량 폐기하기로 했다. 메가박스는 향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굿즈를 제작할 때 사회적·윤리적 영향을 더 철저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정치권도 가세했다. 여야는 영화의 역사적 해석과 표현 방식을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며 충돌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국가 원수 부인이 희생된 비극적 사건을 상업영화의 소재로 삼는 과정에서 사건을 왜곡하거나 특정 시각을 정당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영화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작품을 향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그 화살이 창작자와 배우 개인의 일상과 안전을 겨냥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영화·연출·제작·노동 등 19개 단체가 참여한 영화인연대는 성명을 통해 “작품을 둘러싼 논의가 작품의 내용과 해석을 넘어 참여한 개인의 일상과 안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영화인연대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에 대해 다양한 문제 제기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고, 유족과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의 아픔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대한 비판과 개인에 대한 압박은 분명히 구분돼야 하며, 신상정보 등 사생활 영역으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한국영화감독조합도 비슷한 입장을 냈다. 조합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영화에 대한 비판이 아닌 인신에 대한 선을 넘은 공격”이라며 “한 편의 영화에 대한 평가가 창작자의 다음 작업까지 꺾으려는 시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이어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삶과 생업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며 “창작자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지키는 것이 한국영화의 미래”라고 덧붙였다.‘암살자(들)’은 현재 흥행 면에서는 분명한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영화가 불러온 논쟁은 단순한 흥행 이슈를 넘어 역사 해석, 표현의 자유, 정치적 갈등, 창작자 보호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 관객의 선택은 계속되고 있지만, 영화 밖 논란의 출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