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병역 기피' 유승준, 중학교 영상 보며 한국 향한 미련 못 버려

 병역기피 논란으로 23년째 한국 입국이 금지된 가수 유승준(스티브 유)이 자신의 SNS를 통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8일 유승준은 자신의 SNS 계정에 한국에서 다녔던 중학교 영상을 공개하며 감회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1989년 12월 7일. 내 나이 13살(중학교 1학년) 미국으로 이민 가기 하루 전까지 다니던 송파구 오주 중학교. 그대로네"라는 글과 함께 올린 영상에는 학교 담벼락, 운동장, 학교 건물, 교문 등 중학교 시절 추억이 담긴 장소들이 차례로 담겨 있었다.

 

유승준은 이 영상이 자신의 팬이 직접 촬영해 보내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 팬 중 한 명이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까지 다녔던 중학교를 촬영해 영상으로 보내줬다. 감사하다"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직접 방문할 수 없는 모교의 모습을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게 된 유승준의 감정이 글에 묻어났다.

 

유승준의 한국 입국 금지는 2002년 병역 기피 논란에서 시작됐다. 당시 인기 절정에 있던 유승준은 2001년 12월 "군 복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었다. 그러나 2002년 1월 사회복무요원 대체복무를 앞두고 공연 목적으로 미국에 출국한 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이 과정에서 병역기피 논란이 불거졌고, 법무부는 유승준에게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후 유승준은 여러 차례 한국 입국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201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으나, LA 총영사관이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긴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에서 유승준의 최종 승소가 확정됐지만, LA 총영사관은 지난해 6월 다시 사증(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굴하지 않고 유승준은 지난해 9월 거부처분 취소소송과 함께 법무부를 상대로 입국 금지 결정 부존재 확인 소를 제기하는 등 3차 소송에 나섰다. 그는 지속적으로 한국 입국을 위한 법적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땅을 밟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승준의 SNS에는 종종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한국 음식을 먹는 모습을 공유하거나, 과거 활동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는 콘텐츠를 게시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자신의 학창 시절 모교 영상을 공유하며 감회에 젖는 모습은 더욱 깊은 향수와 그리움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승준의 병역기피 논란은 2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로 남아있다. 일부 팬들과 시민들은 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병역 의무를 회피한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유승준의 한국 입국이 언제 가능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진행 중인 3차 소송의 결과에 따라 그의 한국행 가능성이 달라질 것으로 보이나, 법무부와 외교부의 강경한 입장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승준은 SNS를 통해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복귀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자폐 아들 위한 네버랜드 꿈꾸던 ‘피터 팬 아빠’ 별세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던 전경철씨가 지난 5일 밤 7시50분께 별세했다. 향년 64세.전씨는 자폐성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20년 넘게 홀로 돌봐온 아버지다. 지난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에도 그는 자신의 치료보다 아들의 미래를 더 걱정했다.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어디서, 누구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전씨의 아들 제원씨는 27살의 1급 중증 자폐성 장애인이다. 지적 능력은 두 살 수준에 머물러 있고, 말로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아들을 ‘피터 팬’이라고 불렀다. 나이는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한 아들의 모습에서, 어른이 되지 않는 동화 속 인물을 떠올린 것이다.아들을 맡길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씨는 항암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장애인 장기거주시설을 찾아다녔지만, 제원씨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중증 성인 발달장애인을 장기간 돌볼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현실이 전씨 앞에 놓여 있었다.부자의 사연은 지난 3월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제원씨는 충북의 한 발달장애인 자립시설에 입소했다. 그러나 전씨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 한 명이 갈 곳을 찾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전씨는 아들과 같은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가 구상한 공간의 이름은 ‘피터 팬 네버랜드’였다. 돌봄 공백 속에 놓인 발달장애인들이 외롭게 밀려나지 않고, 보호와 일상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이 계획은 시민들의 참여로 조금씩 현실에 가까워졌다. 전씨가 추진위원장을 맡은 ‘피터팬 자폐인복지재단 설립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후원이 이어졌다.전씨는 생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후원 상황을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시민 1749명이 3억2460만원을 보탰다. 여기에 아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책 ‘안녕, 피터 팬’의 인세와 개인 후원금 1억2300만원이 더해졌다. 모두 4억4760만원이 모였다.목표액은 5억원이었다. 모금이 시작된 지 53일 만에 목표의 90% 가까이가 채워졌다. 일부 기업도 사업 참여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아버지의 절박한 바람이 사회적 약속으로 확장되고 있던 셈이다.하지만 전씨는 네버랜드가 실제 문을 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의 지인은 “아들이 시설에 들어간 뒤에도 고인은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며 “몸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재단을 세우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틴 것 같았다”고 말했다.전씨는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 안치됐다. 생전 뜻에 따라 빈소는 마련하지 않았고 조문도 받지 않는다. 그는 지난달 14일 ‘생전 장례식’을 열어 시민과 후원자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했다.유족으로는 아들 제원씨가 있다. 발인은 7일 낮 12시이며, 장지는 충남 공주 선영이다.전씨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사회에 남아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피터 팬 네버랜드’는 한 가족의 사연을 넘어,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겨온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