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유인원→인간' 틀렸다..신간 '케이브 오브 본즈'

 역사가 직선적인 진보의 길을 걷는다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과거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에 실렸던 ‘진보의 행진’(The March of Progress)이라는 그림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은 유인원에서 시작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마치 한 줄로 진화해온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서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지적했듯이, 역사는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굴곡을 거치며 때로는 후퇴와 복잡한 경로를 반복한다.

 

세계적인 고고학자 리 버거는 최근 출간한 저서 『케이브 오브 본즈』(Cave of Bones)에서 이 같은 기존의 진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우리는 일직선으로 진화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며, 인류의 진화는 한 갈래로 이어지는 직선이 아니라, 여러 종이 분기하고 사라지는 복잡한 ‘계통수’ 형태라고 설명한다. 계통수는 생물의 진화적 관계를 나뭇가지처럼 표현한 도식으로, 인류의 진화도 이와 같이 다양한 갈래와 교차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생물학적 친척인 침팬지와 보노보는 약 600만~800만 년 전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졌고, 이후 인류의 조상들도 수많은 갈래로 분화했다. 호모속(Genus Homo)에 속하는 다양한 조상 종들은 약 300만 년 동안 등장과 소멸을 반복했으며, 그 가운데 20만 년 전 드디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 시기에 오직 사피엔스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리 버거는 2013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라이징스타 동굴'에서 '호모 날레디'(Homo naledi)라는 새로운 인류 화석을 발견했다. 이들은 약 20만\~30만 년 전에 살았으며, 현생 인류와 같은 시기에 지구상에 존재했다. 더욱이 단순히 같은 시기에 존재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호모 날레디는 사피엔스와 놀라운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뇌 용량은 침팬지보다 약간 큰 수준에 그쳤지만, 체형은 사피엔스와 흡사했고, 도구를 사용하며 불을 다루고 난로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매장 문화도 존재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이는 기존의 ‘진화=두뇌 용량의 증가’라는 인식에 강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복잡한 문화적 행동은 반드시 큰 뇌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호모 날레디의 존재는 2020년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이 선정한 ‘10년간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상위 10위 안에 포함되기도 했다. 인류 진화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리 버거는 “호모 날레디의 문화적 성장은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인류가 어떻게 ‘인간다움’을 갖추게 되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며, “날레디와 사피엔스가 공존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밝혔다. 그가 발견한 화석의 연대가 현생 인류가 출현한 시기와 겹치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의 역사는 단순한 직선이 아닌, 다양한 가지들이 얽히고설킨 복합적인 계통의 연속이다. 여러 갈래로 퍼졌다가 사라진 인류의 흔적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과 기원을 다시금 되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인류는 일직선의 정답을 따라 진화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험과 실패, 그리고 공존의 흔적 위에서 ‘현생 인류’라는 갈래에 도달한 것이다. 과학이 밝혀낸 이 흥미로운 여정은, 인류가 걸어온 길이 단순한 진보가 아닌 복잡한 여정임을 일깨워준다.

 

9만 명이 선택한 핑계고 시상식.."억지 감동 빼고 웃음 꽉 채웠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제3회 핑계고 시상식이 공개된 지 단 3일 만에 조회수 800만 회를 돌파하며 온라인을 그야말로 초토화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지상파 시상식의 관습적이고 지루한 형식을 완전히 탈피했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화려한 조명과 드레스, 억지스러운 축하 공연 대신 이들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이야기였다. 결과는 명확했다. 웃음이 가장 먼저 터져 나왔고 감동은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왔다.핑계고 시상식의 현장 분위기는 엄숙한 시상식이라기보다 친밀한 연말 모임에 가까웠다. 배우와 방송인, 가수 그리고 현장의 제작진까지 한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섞여 앉았다. 이들은 서로의 근황을 묻고 지난 회차에서 못다 한 뒷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 놓았다. 카메라는 인위적인 연출을 배제한 채 현장의 온도를 있는 그대로 안방으로 전달했다.사회를 맡은 유재석의 진행은 그 어느 때보다 절제되어 있었다. 웃음을 억지로 짜내기 위해 출연진을 몰아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화 도중 발생하는 찰나의 침묵조차 하나의 서사로 남기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이는 시상식이 단순히 보여주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출연자와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가 함께 시간을 나누는 과정임을 증명한 대목이다.이번 시상식의 백미는 단연 대상의 순간이었다. 온라인 투표에 참여한 9만여 명의 시청자 중 과반이 선택한 주인공은 지석진이었다. 데뷔 이후 첫 대상이라는 수식어는 화려했지만 지석진의 수상 소감은 오히려 담백했다. 오랜 시간 연예계에서 버텨온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함께 그 시간을 견뎌준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의 지난 시간이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놓이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핑계고 시상식은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그 울림을 더 깊게 만들었다. 대상 후보였으나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조세호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유재석은 짧지만 진심 어린 박수를 청했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없었지만 그 배려만으로도 충분했다. 시상식이 성취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부재와 시간까지 존중하는 공간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송은이가 건넨 위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최근 여러 소란을 겪으며 마음고생을 했을 동료에게 보내는 사적인 연대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과장된 미사여구 없는 위로가 오히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법임을 핑계고는 잘 알고 있었다.구성 측면에서도 핑계고는 효율적이고 영리했다. 불필요하게 부문을 늘려 상을 나눠주는 이른바 참석상 관행을 과감히 삭제했다. 전문 심사위원의 안목과 네티즌 투표라는 두 축을 분명히 세워 시상의 권위를 확보했다. 축하 무대 역시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 되어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황정민의 시상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고 이효리의 수상 소감은 연말의 감정선을 과장 없이 담아냈다.매년 연말이면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는 지상파 시상식들과의 비교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핑계고 시상식은 규모 면에서는 작았지만 메시지는 더 정확했다. 외형적인 크기를 키우기보다 이야기의 맥락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트로피의 개수를 줄이는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 전략이 통한 것이다.마지막 인사는 화려한 불꽃놀이 대신 차분한 정리로 마침표를 찍었다. 유재석은 지난 한 해가 누구에게나 쉽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무탈을 빌고 내년을 이어가겠다는 최소한의 약속만을 남겼다. 감정의 과잉이나 억지스러운 감동 조작은 어디에도 없었다.결국 핑계고 시상식은 콘텐츠의 성패가 화려한 형식이나 거대한 자본보다 대중을 대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했다. 과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오래 기억될 이번 시상식은 웹 예능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한 웃음을 넘어선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 핑계고의 다음 행보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