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대학가 서점·복사집 잔혹사, 종이가 사라진다

 대학가의 상징이었던 두꺼운 전공 서적과 인쇄물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캠퍼스 상권의 지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동문회관에서 복사집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매년 매출이 급감하는 현실에 직면하며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과거 학기 초마다 전공 교재를 제본하거나 강의 자료를 출력하기 위해 학생들로 붐비던 풍경은 이제 옛일이 되었다. 논문조차 종이로 인쇄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대학가 인쇄소와 제본집들은 수익성 악화로 인해 폐업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서울 주요 대학들의 교내 서점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3년 사이 서강대와 중앙대를 시작으로 성균관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주요 대학의 서점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서점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무인 복사기나 다른 편의 시설이 들어서고 있지만, 학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학가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서점들이 사라진 배경에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학습 방식의 변화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학생들이 종이책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휴대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한 권에 1kg이 넘는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들고 다니는 대신, 태블릿 PC 한 대에 모든 교재를 PDF 파일로 저장해 다니는 것이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실제로 20대와 10대의 태블릿 보유율은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여 현재는 절반 이상의 학생이 디지털 기기를 학습에 활용하고 있다. 종이책보다 저렴하고 검색과 필기가 용이한 전자책(e북)의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수치로 나타난 변화도 압도적이다. 대형 서점의 대학 교재 매출 분석에 따르면 전체 매출 중 전자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5년 만에 4배 이상 급증했다. 종이책 매출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사이 전자책은 전체 매출의 3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의 주류로 부상했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하듯 대학가 주변에는 전공 서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주는 스캔 전문 업체들이 성행하고 있으며, 개강 시즌마다 예약이 폭주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캠퍼스의 소통 방식 또한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과거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벽면의 대자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로 대체되었고, 동아리방에 모여 진행하던 조별 과제는 화상 채팅 앱과 협업 툴을 활용한 비대면 방식으로 바뀌었다. 종이 뭉치를 들고 토론하던 모습 대신 노트북 화면을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자료를 수정하는 풍경이 일상화된 것이다. 이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진 물리적 제약을 디지털 기술이 허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를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진단하며 대학의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종이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에게 기존의 학습 방식을 강요하기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교육 콘텐츠 개발과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대학가의 풍경 변화는 단순한 상권의 쇠퇴를 넘어 지식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각 대학은 디지털 전환에 따른 학습 효율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사라져가는 오프라인 학습 공간의 새로운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약국의 배민화'에 거리 나온 1만 약사들

 패션·뷰티 매장에 약국이 들어서고 창고형 약국이 확산하는 등 의약품 유통과 소비 지형이 급변하는 가운데, 정부가 비대면 진료에 따른 처방약 배송 확대를 공식화하면서 약사 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소비자단체와 플랫폼 업계는 환자 접근성 향상을 이유로 반기는 반면, 약사들은 약물 오남용 부작용과 '약국의 배민화'를 우려하며 8년 만에 대규모 거리 투쟁까지 감행했다.보건복지부는 최근 일부 취약계층 등으로 제한되었던 처방약 배송 대상을 모든 비대면 진료 환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약사회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전국 약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 방침을 강력히 비판했다. 현장에는 전국 약사 7000명과 약대생 3000명 등 1만 여명이 결집했다. 약사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지난 2018년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 반대 집회 이후 8년 만이다. 집회 참석자들은 의약품이 단순한 편의성이나 기업의 수익만을 좇아 택배 상자에 담겨 문 앞에 던져질 수 있는 공산품이 결코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약사회 측은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이 결합할 경우 불필요한 오남용 처방이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환자가 특정 약을 먼저 선택한 뒤 이를 처방해 줄 의사를 연결받는 비대면 플랫폼 구조상, 위험성이 높은 약물이 과다 유통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단기간 여러 의료기관을 돌며 항우울제를 집중 처방받거나, 600일분에 달하는 의약품을 한 번에 발급받는 실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아울러 플랫폼에 수수료를 내고 환자를 받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소신 있는 처방 중재와 복약지도가 불가능해지고 지역 보건의료 거점으로서 동네 약국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최근 약국 전용 화장품과 일반 의약품을 함께 파는 '무신사 약국'의 등장이나 인공지능(AI) 기술 발달 등 의약품 소비 환경이 다변화되면서 약사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이번 대규모 집회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약사 사회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이 약사의 존재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충실한 복약지도 등 본연의 기능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부의 정책 추진 속에서 국민 건강권과 약국의 정체성을 한데 지켜낼 수 있는 세심한 정책적 정비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