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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새론, 생전 결혼·낙태? 유튜버 폭로로 '진실게임' 점입가경

 연예기자 출신 유튜버 이진호 씨가 故 김새론 씨를 명예훼손한 혐의로 유족에게 고소당한 가운데, 김새론 씨가 생전 결혼과 낙태를 했다는 주장을 펼쳐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씨의 주장에 대해 고인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진호 씨는 지난 1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연예 뒤통령이진호'를 통해 김새론 씨가 지난 1월 소셜미디어에 웨딩 화보를 올렸을 당시, 이미 미국에서 남자친구와 결혼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새론 씨 측은 "친구와 찍은 스냅 사진"이라며 결혼설을 부인했지만, 이 씨는 매니저 A씨와 김새론 씨로 추정되는 여성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반박했다.

 

이진호 씨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인의 녹취를 공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1월 8일에 녹음된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해당 통화에서 김새론 씨로 추정되는 여성은 웨딩 사진에 대해 "남자친구가 게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니저 A씨가 결혼식을 올렸는지, 한국과 해외 중 어디에서 진행했는지 묻자, 여성은 "이미 결혼한 상태가 맞다. 해외에서 식을 올렸다"고 인정했다. 더불어 이 여성은 "(현재) 남자친구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지만, 원만하게 헤어지려던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지웠다. 그 일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남자친구로부터) 일종의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해당 여성은 남자친구에 대해 "그냥 뉴욕에서 대기업 다니는 일반인"이라고 소개했다. 이 씨는 해당 여성이 김새론 씨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현재 (김새론) 유가족분들은 4년 전 남자친구인 김수현 씨에 대해 대대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김새론 본인은 다른 남성과 결혼해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씨의 주장에 대해 누리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새론 씨가 미성년자 시절부터 교제했다는 의혹을 받는 배우 김수현 씨 관련 내용과 이번 사건은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결혼', '낙태' 등의 프레임을 만들어 고인을 나쁜 여자 만들려는 거 아니냐. 고인 모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새론 씨 유족과 김수현 씨 측은 미성년자 시절의 교제 의혹, 7억 원에 달하는 변제 압박설 등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진호 씨의 폭로는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으며, 고인의 명예를 둘러싼 진실 게임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활명수'로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구한 기업가 민강

 '생명을 살리는 물' 활명수를 만든 기업가이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독립운동가. 동화약품의 초대 사장 민강의 파란만장한 삶이 평전 출간을 계기로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제약인으로서 민족의 아픔을 보듬고, 기업가로서 벌어들인 돈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그의 헌신이 2026년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그의 시작은 백성을 향한 마음이었다. 부친 민병호 선생과 함께 개발한 활명수는 급체와 토사곽란으로 스러져가던 구한말 민초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사 동화약품을 설립, 제약 산업의 기틀을 다진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하지만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독립운동가였다. 회사는 단순한 제약사를 넘어 일제에 맞서는 비밀스러운 신경망으로 기능했다. 항일 비밀결사 '대동단'에 참여해 활동 자금을 댔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망인 '서울 연통부'를 회사에 설치해 운영했다. 활명수를 판 돈은 고스란히 독립운동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고, 회사는 독립지사들의 연락 거점이자 은신처가 되었다.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는 결국 시련으로 돌아왔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국내 독립운동을 뒤흔든 '조선민족 대동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일제에 체포된 것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며 독립운동가로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그의 헌신은 교육 분야에서도 빛을 발했다. 민강은 나라의 미래가 인재 양성에 있다고 믿고 교육 사업에 투신했다. 1907년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 설립에 참여했으며, 1918년에는 조선약학교 설립을 주도하며 약학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세운 조선약학교는 오늘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전신이 되어 대한민국 약학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기업가, 교육가, 독립운동가라는 세 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민강. 그의 공로를 인정해 정부는 1963년 제약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번 평전 출간은 시대를 초월하는 그의 애민정신과 헌신을 현재의 언어로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