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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밌다…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숨겨진 미친 상징들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관객들에게 N차 관람을 유도하는 숨은 디테일들을 공개하며 흥미를 더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서사 곳곳에 의미심장한 상징과 장치를 배치해 관객들이 다채로운 해석을 내놓게 만든다.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했던 순간 해고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장 만수(이병헌 분)의 처절한 재취업 분투기를 그린 이 영화는, 그의 내면을 상징하는 정원의 식물부터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대화하는 옛 가요, 인물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의상에 이르기까지, 스쳐 지나가기 쉬운 모든 요소에 깊은 의도를 담아내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의 핵심적인 상징 중 하나는 만수의 정원 한가운데 자리한 '배롱나무'다. 박찬욱 감독은 근육질 몸을 연상시키는 단단하고 울퉁불퉁한 나무의 몸통과 굵은 가지가 주인공 만수를 떠올리게 해 이 나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분홍색 꽃잎과 달리 비틀리고 거친 몸통을 가진 배롱나무의 모습은, 평온해 보이는 가장의 삶 이면에 숨겨진 만수의 고뇌와 거친 성장 과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여기에 '부귀'라는 꽃말은 그가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정원 입구에 심어진 '위성류'라는 식물의 꽃말은 '범죄'로, 앞으로 만수에게 닥쳐올 파국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하며 섬세한 연출에 감탄하게 만든다.

 


영화의 또 다른 백미는 적재적소에 활용된 추억의 한국 가요들이다. 특히 만수와 범모(이성민 분), 아라(염혜란 분)가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난투 장면에서는, 극적인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용필의 경쾌한 노래 '고추잠자리'가 흘러나와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웃음을 유발한다. 이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또한, 비 내리는 거리에서 실의에 빠진 만수의 모습 위로 흐르는 김창완의 '그래 걷자'는 그의 자조적인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가사로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범모와 아라 부부의 애틋한 과거를 장식하는 배따라기의 '불 좀 켜주세요'는 이들의 관계에 복잡한 정서를 더하며 극의 감정선을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인물들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의상 또한 놓쳐선 안 될 관전 포인트다.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 분)와 범모의 아내 아라는 영화 속에서 동일한 디자인의 니트를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입고 등장한다. 이는 비슷한 환경에 처해 있지만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두 인물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가 이들 부부를 보며 자신의 부부 관계를 반성하고 아내를 의심하게 되는 등, 타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 같은 설정을 원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어쩔수가없다'는 감독이 세심하게 설계한 상징들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곱씹어볼 때 더욱 깊은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침팬지의 어머니,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만 남기고 떠나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환경 운동의 상징, 제인 구달이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제인 구달 연구소는 그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설 투어를 이어가던 중 자연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년 300일 이상 전 세계를 누비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던 그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한 셈이다. 그의 타계 소식에 전 세계는 과학계의 혁명가이자 지칠 줄 몰랐던 행동가를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타잔'과 '닥터 두리틀'을 읽으며 아프리카의 동물을 꿈꿨던 영국인 소녀는, 한 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유산을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갔다.그의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비서로 일하던 구달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1957년, 친구의 초대로 방문한 케냐에서였다. 그곳에서 저명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선 운명이었다. 리키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아 선입견이 없던 구달의 순수한 열정과 날카로운 관찰력에 주목했다. 그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야생 침팬지 연구의 적임자로 구달을 지목했고, 이는 당시 학계의 통념을 깨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렇게 26세의 구달은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직 동물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밀림으로 향했다.곰베에서 시작된 그의 연구는 곧 인류의 오만함을 뒤흔드는 혁명적인 발견으로 이어졌다. 구달은 침팬지들이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각기 다른 개성과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 밝혀냈고, 그들에게 번호 대신 이름을 붙여주며 교감했다. 특히 흰개미를 사냥하기 위해 풀줄기를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은 과학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졌던 '도구 사용'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발견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고, 포획된 동물이 아닌 야생 개체를 장기간 관찰하는 그의 연구 방식은 동물행동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단순한 학문적 성과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그는 연구 과정에서 침팬지의 서식지가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현실을 목격하고 환경 운동가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1977년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한 이후, 그는 연구실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았다. 강연과 캠페인을 통해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특히 미래 세대에게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희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늘 말했던 그는,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힘을 가지고 있음을 믿었고, 우리 각자가 남기는 '생태학적 발자국'을 최소화할 것을 호소했다. 침팬지의 어머니에서 인류의 스승으로 거듭난 그는,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희망의 증거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