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남편은 '총력 방어', 부인은 '보석 호소'... 법정에서 펼쳐진 윤석열-김건희의 두 개의 싸움

 사법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장면이 연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7일, 처음으로 같은 날 나란히 법정에 섰다. 전직 대통령 부부가 피고인 신분으로 같은 날 법원 청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례 없는 일로, 이들의 재판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불과 5분의 시차를 두고 두 사람의 재판이 각각 다른 법정에서 열렸다.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재판이 10시 10분에 시작됐고, 윤 전 대통령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재판은 10시 15분에 이어졌다. 두 사람이 법원 복도에서 마주치는 어색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와 김 여사가 있는 남부구치소 측이 사전에 동선을 철저히 조율해 이들의 경로가 겹치지 않도록 조치한 결과다.

 

최근 윤 전 대통령의 법정 대응 전략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7월 재구속된 이후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재판 출석을 거부하며 '버티기'로 일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지난달 30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기점으로 이날까지 5회 연속 법정에 출석하며 이전과 180도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자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직접 증인신문을 주도하고 모든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등 공세적인 방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러한 전략 수정의 배경에는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 등 사건의 진실을 밝힐 핵심 증인들이 연이어 증언대에 서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재판 역시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의 날 선 반격이 이어졌다.

 


김건희 여사 역시 자신의 재판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24일 열린 첫 공판 이후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모든 재판에 출석하며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구속 수감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한 심리적 압박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 측은 지난 3일, 불안 증세 악화 등을 호소하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이에 재판부는 오는 12일 보석 심문을 열어 김 여사의 석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김 여사의 건강 상태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향후 재판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날 김 여사 재판에는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명태균 씨가 증인으로 나와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결국 한때 국가를 이끌던 대통령 부부는 이제 법원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각자의 운명을 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처지가 됐다. 지난달에도 두 사람의 재판 일정이 겹쳤으나 윤 전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동시 출석'은 불발된 바 있다. 그러나 오늘,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혐의를 방어하기 위해 법정에 서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이게 됐다. 한 명은 혐의를 벗기 위해 변론 전략을 수정하며 총력전을 펼치고, 다른 한 명은 심신의 고통을 호소하며 불구속 재판을 간절히 바라는 상황. 두 개의 재판, 두 개의 운명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교차하며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유물이 살아 움직인다”…국중박 분장놀이 열풍

백제 금동대향로가 뚜껑을 열고 흰 연기를 내뿜으며 무대 위를 걷는다. 금빛으로 온몸을 꾸민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관객과 만난다. 버려진 종이상자와 수백 개의 병뚜껑으로 삼국시대 금동신발을 표현한 학생들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국중박 분장놀이 전국편’이 만들어낸 장면들이다. 최근 이 행사는 SNS에서 48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유산을 직접 몸으로 표현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참여형 콘텐츠가 대중의 호응을 얻은 것이다.과거 박물관은 조용히 유물을 감상하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남녀노소가 직접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 공간으로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사실 예술 작품을 사람들이 직접 따라 하며 즐기는 문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명화나 역사적 장면을 사람의 몸과 주변 배경으로 재현한 뒤 그대로 멈춰 있는 ‘활인화(Tableaux Vivants)’가 사교적인 오락으로 인기를 끌었다.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미국 J. 폴 게티 미술관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활용해 유명 작품을 재현하는 챌린지를 제안했고, 이는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이어졌다.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흐름을 우리 문화유산에 접목했다. 2025년 처음 시작한 ‘국중박 분장놀이’는 유리 진열장 안에 놓여 있던 유물을 사람들이 직접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기획이다.참가자들은 단순히 유물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찾아보고 공부한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익숙하게 보던 문화유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면서 진열장 속 유물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특히 지난해 시작한 행사가 큰 호응을 얻으면서 올해는 전국 4개 권역으로 범위를 넓혔다. 참가자들은 널리 알려진 유물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까지 찾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재현했다.이 과정에서 대중은 단순히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서 벗어났다. 자신이 직접 문화유산을 알아보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재미를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하지만 행사가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지역 박물관의 현실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형 국립박물관에 비해 지방 공립박물관은 인력과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지역에도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향토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이런 유물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한다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있다.문제는 이를 실제 기획으로 이어갈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 공립박물관에서는 소수의 학예사가 유물 관리뿐 아니라 각종 행정 업무까지 맡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이유다.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발길을 지역으로 이끄는 문화 콘텐츠도 필요하다. 이번 ‘국중박 분장놀이’의 흥행은 재미있는 콘텐츠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따라서 이 기획이 단순한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전국적인 문화 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역 박물관으로 경험을 넓힐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행사 규모를 확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의 작은 박물관들도 비슷한 기획을 시도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지역 박물관에 잠들어 있는 향토 문화유산도 주민들의 아이디어를 만나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사람들이 직접 유물을 표현하고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면 박물관은 지역민에게 더욱 가까운 공간이 될 수 있다.국중박 분장놀이가 보여준 가능성이 수도권의 대형 박물관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 곳곳으로 이어진다면 문화유산을 즐기는 방식도 더욱 다양해질 수 있다. 진열장 속에 머물던 유물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문화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