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도쿄, 오사카는 이제 그만"…일본이 한국인에게만 콕 집어 추천한 '진짜 여행지'

 한일 양국 간의 교류가 국교 정상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며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일본이 한국인 관광객을 자국의 '소도시'로 유치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미즈시마 코이치 주한 일본대사는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관광이야말로 양국의 신뢰를 다지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라고 강조하며, 이제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넘어 지방 소도시 간의 교류가 새로운 한일 관계의 핵심 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65년 연간 1만 명에 불과했던 인적 교류가 지난해 12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 상황에서,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라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관광을 시작으로 경제, 문화, 청년 세대 교류 전반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양국 관계의 기반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한국인의 일본 사랑은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쏠림 현상'이라는 과제가 존재한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4명 중 1명은 한국인이었으며, 이는 숫자로 881만 명에 달하는 압도적인 1위 기록이다. 한국인 해외 출국자 3명 중 1명이 일본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발길은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되었다. 간사이, 후쿠오카, 나리타 등 단 3개 공항을 통해 입국한 비율이 전체의 80%에 육박했으며, 숙박 역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3대 도시에 60% 이상이 몰렸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인 관광객이 비슷한 동선의 단기 체류형 여행에 머무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은 이러한 편중 현상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관광 성장을 위해 지방 공항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숨겨진 소도시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일본은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소도시'라는 캠페인을 내걸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섰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홍보 리셉션에는 이와테, 나가노, 돗토리현 등 무려 12개 현의 지사단이 직접 참석해 한국 여행 및 항공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다. 이들은 각 지역의 특색을 담은 홍보 부스를 마련하고, 일본 최대의 사구를 중심으로 한 체험형 관광(돗토리현), 스키와 온천을 연계한 동계 여행(나가노현), 후지산 인근의 와이너리 투어(야마나시현) 등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채로운 관광 상품을 제안하며 공동 상품 개발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맞춤형 전략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일본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관광객을 분산시키는 것을 넘어, 2029년까지 인바운드 관광 소비액을 현재의 두 배에 가까운 15조 엔으로 끌어올리려는 거대한 경제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대도시 중심의 쇼핑 관광만으로는 이러한 목표 달성에 한계가 있기에, 일본의 진짜 매력인 현지의 음식과 술, 온천, 청정 자연, 그리고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여행' 모델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관광객에게는 획일적인 여행에서 벗어나 보다 깊이 있고 다채로운 경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본에게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가 전체의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관광을 매개로 한 지방 도시 간의 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양국 청년 세대와 지역 기업 간의 협력으로까지 이어져 한일 관계에 실질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전쟁의 포화 속에서 1,023일간 대한민국의 심장 역할을 했던 부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통해 그 시절의 애환을 세계에 알린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중에서도 우암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