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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왕 위엄 어디로..'린샤오쥔'의 비극적 피날레

한때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미래를 책임질 천재로 불렸던 사나이가 이제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유니폼을 입고 고개를 숙였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 다시 선 올림픽 무대였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에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한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 단 하나의 메달도 목에 걸지 못한 채 빈손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대회가 끝난 뒤 그가 SNS를 통해 전한 메시지는 한국 팬들에게는 씁쓸함을, 중국 팬들에게는 뜨거운 충성심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린샤오쥔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폭발적인 스피드와 영리한 경기 운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인전 세 종목 모두 준결승 문턱조차 밟지 못하고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믿었던 계주에서도 운은 따르지 않았다. 남자 5000m 계주에서는 중국 대표팀 자체가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가장 기대를 모았던 혼성 2000m 계주에서는 팀 동료의 실수로 눈앞에서 동메달을 놓쳤다. 특히 혼성 계주 당시 린샤오쥔은 준준결승만 소화한 뒤 정작 중요한 준결승과 결승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불과 2년 전인 202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며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던 그였기에 이번 올림픽의 몰락은 더욱 뼈아프다. 린샤오쥔은 대회 직전 중국 관영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악물고 8년을 버텼다며 비장한 각오를 전했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한국 대표팀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캐나다 등 전통의 강호들은 물론 개최국 이탈리아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해야 했다.

 


대회 종료 후 린샤오쥔은 자신의 SNS를 통해 중국에 대한 절절한 감사를 표했다. 그는 나라 덕분에 다시 올림픽에 설 수 있었다며 이 영광은 평생 함께할 것이라고 적었다. 또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기억하겠다며 중국 쇼트트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린샤오쥔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30 프랑스 알프스 동계올림픽 관련 사진을 올리며 다음 대회 출전 의지까지 암시했다. 1996년생인 그가 4년 뒤 서른네 살의 나이로 다시 빙판에 서겠다는 것은 사실상 선수 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중국을 위해 태우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러한 행보를 지켜보는 국내 빙상계와 팬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많은 이들은 린샤오쥔이 이번 메시지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다리마저 스스로 불태웠다고 평가한다. 한때 대한민국의 에이스로서 평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그가 이제는 완벽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며 한국 팬들과의 정서적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냈기 때문이다.

 

그의 야구 인생이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동료 선수와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았던 그는 긴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명예를 회복했다. 동료 여자 선수들이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변호에 나선 결과였다. 하지만 린샤오쥔은 법의 판결이 나오기도 전인 2020년에 이미 중국 귀화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국민들에게 큰 배신감을 안겼다.

 


더욱이 귀화 과정에서 출입국관리법을 어겨 벌칙금까지 부과받은 사실은 그의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켰다. 한국 국적자가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60일 이내에 체류 자격을 변경해야 함에도 이를 어기고 머물렀던 것이다. 결국 한국 쇼트트랙의 10년을 책임질 역대급 재능은 한순간의 실수와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타국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린샤오쥔의 이번 올림픽 참패는 단순한 성적 부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가를 바꾼 선택이 결과적으로 본인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도 세대교체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가 다음 올림픽에서 과연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SNS에서는 그를 응원하는 중국 팬들의 댓글과 안타까움을 표하는 한국 팬들의 설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한때는 대한민국을 열광하게 했던 금메달리스트였지만 이제는 먼 나라의 노장 선수가 되어버린 린샤오쥔. 그가 꿈꾸는 2030년의 프랑스 빙판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가 그토록 강조한 중국에 대한 의무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전 세계 빙상 팬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확실한 것은 그가 내뱉은 뜨거운 감사의 인사가 한국 팬들에게는 차가운 작별 인사로 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40년 만에 귀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온다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의 초기 걸작 '나부코'가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건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로 돌아온다. 서울시오페라단이 1986년 국내 초연을 선보인 이후 처음으로 다시 올리는 이번 무대는 오는 4월, 웅장한 합창과 드라마틱한 서사로 관객을 압도할 준비를 마쳤다.'나부코'는 기원전 6세기를 배경으로, 바빌로니아의 왕 나부코와 그의 딸 아비가일레, 그리고 핍박받는 유대 민족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신의 영역을 넘본 오만한 권력자의 광기와 파멸, 왕좌를 향한 비뚤어진 욕망,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민족의 염원이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한다.이 작품이 베르디를 단숨에 이탈리아 오페라의 총아로 떠오르게 한 데에는 3막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가라, 상념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이 합창은, 조국을 잃은 민족의 슬픔과 해방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담아내며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선사했다.이번 프로덕션은 '운명의 체스판' 위에서 벌어지는 '오페라판 왕좌의 게임'을 콘셉트로, 원작의 장대함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고대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담아낸 의상과 역동적인 무대 장치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스펙터클을 선사하며, 각 인물이 펼치는 치열한 심리전을 극대화할 예정이다.최정상급 제작진과 출연진의 만남도 기대를 모은다. '리골레토'와 창작오페라 '양철지붕'으로 호평받은 장서문이 연출을 맡고,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지휘자 이든이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을 이끈다. 바리톤 양준모와 최인식, 소프라노 서선영과 최지은 등 실력파 성악가들이 대거 출연해 무게감을 더한다.서울시오페라단에게 이번 '나부코' 공연은 40년 전 자신들이 열었던 한국 오페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펼치는 의미 있는 무대다. 웅장한 합창의 힘을 통해 공동체의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포부처럼, 이번 공연은 단순한 작품의 재현을 넘어 깊은 시대적 울림을 선사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