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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이의 독한 재정비..44kg 뼈마름 근황 포착

배우 윤진이가 한 달간의 긴 휴식을 마치고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재정비의 시간을 갖겠다며 돌연 잠적했던 그녀가 전한 소식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며 보낸 시간 동안 몸무게가 활동 이후 최저치인 44kg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이다. 화려한 여배우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온 그녀의 리얼한 일상이 공개되자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벌써부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윤진이는 지난 24일 자신의 공식 유튜브 채널 진짜 윤진이를 통해 공주님들 저 왔어요 밥 먹고 운동하는 요즘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가녀린 모습으로 등장해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달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 윤진이는 특유의 솔직하고 털털한 화법으로 근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그녀의 생활 습관 변화였다. 윤진이는 재정비 기간 동안 스마트폰과 SNS를 완전히 끊고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단식과 육아를 병행하며 보낸 한 달은 그녀를 마치 자연인처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전자기기를 멀리하자 세상이 너무나 심심하게 느껴졌지만 덕분에 매일 밤 9시에서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밤늦게까지 촬영과 스케줄에 시달려야 했던 과거의 삶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식생활의 변화도 극적이었다. 외부 음식을 사 먹는 대신 유기농 식재료를 직접 구매해 집에서 정성껏 요리해 먹는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수면을 취했음에도 몸무게는 역대급으로 줄어들었다. 윤진이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나선 외식 자리에서 지인에게 나 좀 말라 보이지 않느냐고 물으며 고생 다이어트로 44kg까지 찍었다가 지금은 겨우 45kg을 유지 중이라고 털어놨다. 육아와 집안일이 주는 노동 강도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었다.

 


영상 속에서 윤진이는 딸 제이제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품에 안은 그녀는 나만 사랑해 주는 아이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친구가 더 좋아져서 엄마 곁을 떠나게 될까 봐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영락없는 딸 바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작품 속에서 보여주던 발랄한 캐릭터와는 또 다른 엄마 윤진이의 깊은 모성애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이날 영상의 백미는 남편과의 단란한 저녁 외식 데이트였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오붓한 시간을 가지며 과거 연애 시절을 회상했다. 윤진이는 연애 때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술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다고 고백했다. 술이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술 한잔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훨씬 더 소중하고 좋다고 강조했다. 이에 남편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술을 마시고 있었을 것이라며 농담을 던지자 윤진이는 단호하게 지금의 생활이 더 만족스럽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들의 로맨틱한 데이트는 오래가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을 픽업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두 사람은 허겁지겁 자리를 정리하며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남편이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냐며 장난 섞인 하소연을 하자 윤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명언을 남겨 웃음을 자아냈다. 화려한 레드카펫 위의 배우도 결국 현실에서는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평범한 부모라는 사실이 많은 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영상이 공개된 직후 누리꾼들은 44kg이라니 정말 뼈밖에 안 남았겠다며 걱정하는 반응과 육아가 진짜 다이어트보다 힘들긴 힘든 모양이라는 공감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또한 여전히 임메아리 시절처럼 상큼한데 엄마가 된 모습이 더 보기 좋다며 그녀의 복귀를 반기는 목소리도 높다. 스스로를 가두고 재정비했던 시간이 배우 윤진이에게는 인간으로서 한층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활동 이후 최저 몸무게라는 기록적인 변화를 겪었지만 얼굴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이는 윤진이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평범하고도 치열한 육아의 일상을 공유하며 대중과 더욱 가깝게 소통하기 시작한 그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통해 다시 배우의 모습으로 돌아올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단은 44kg의 가녀린 몸을 추스르고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팬들이 바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활명수'로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구한 기업가 민강

 '생명을 살리는 물' 활명수를 만든 기업가이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독립운동가. 동화약품의 초대 사장 민강의 파란만장한 삶이 평전 출간을 계기로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제약인으로서 민족의 아픔을 보듬고, 기업가로서 벌어들인 돈을 아낌없이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그의 헌신이 2026년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그의 시작은 백성을 향한 마음이었다. 부친 민병호 선생과 함께 개발한 활명수는 급체와 토사곽란으로 스러져가던 구한말 민초들의 생명수 역할을 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사 동화약품을 설립, 제약 산업의 기틀을 다진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하지만 그의 또 다른 이름은 독립운동가였다. 회사는 단순한 제약사를 넘어 일제에 맞서는 비밀스러운 신경망으로 기능했다. 항일 비밀결사 '대동단'에 참여해 활동 자금을 댔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연락망인 '서울 연통부'를 회사에 설치해 운영했다. 활명수를 판 돈은 고스란히 독립운동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고, 회사는 독립지사들의 연락 거점이자 은신처가 되었다.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는 결국 시련으로 돌아왔다.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국내 독립운동을 뒤흔든 '조선민족 대동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일제에 체포된 것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며 독립운동가로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그의 헌신은 교육 분야에서도 빛을 발했다. 민강은 나라의 미래가 인재 양성에 있다고 믿고 교육 사업에 투신했다. 1907년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 설립에 참여했으며, 1918년에는 조선약학교 설립을 주도하며 약학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세운 조선약학교는 오늘날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의 전신이 되어 대한민국 약학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기업가, 교육가, 독립운동가라는 세 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민강. 그의 공로를 인정해 정부는 1963년 제약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번 평전 출간은 시대를 초월하는 그의 애민정신과 헌신을 현재의 언어로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