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비극의 낙동강, 이제는 건축 여행의 메카로

 전쟁의 상흔이 깊게 패인 경북 칠곡의 땅 위로 새로운 예술적 지층이 쌓이고 있다. 과거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방이자 다부동 전투의 비극이 서린 이곳은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과 엄숙한 추모의 공간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칠곡은 전쟁의 기억을 넘어, 그 파괴된 자리에 다시 세워진 건축물들을 통해 삶의 회복과 사색을 제안하는 여행지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왜관읍 일대를 중심으로 국경과 세대를 넘나든 건축가들의 흔적이 켜켜이 쌓이며 칠곡만의 독특한 인문학적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석적읍 논둑길 사이에 자리 잡은 복합문화공간 '시호재&시차'가 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의 풍경 속에 파고든 이 현대적인 건축물은 외지인들을 칠곡으로 불러모으는 강력한 자석 역할을 한다. 이곳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개인 미술관과 게스트하우스를 겸비한 건축주의 꿈이 담긴 집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동시에, 건축이 선사하는 공간의 미학과 정서적 몰입감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일상의 번잡함을 덜어낸다.

 


공간의 이름인 '시호재'는 시간을 얹는 활의 집이라는 뜻을 지니며, '시차'는 외부 세계와는 다른 느린 시간이 흐르는 곳임을 상징한다. 건축물은 마치 촛불을 감싸 쥔 두 손처럼 유연한 타원형 곡선을 그리며 서 있다. 두 동의 건물은 시선이 머무는 각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며 방문객에게 끊임없는 시각적 자극을 준다. 높게 솟아 위압감을 주는 대신, 낮은 자세로 주변 농가와 조화를 이루며 차분하게 공간을 구분 짓는 배려가 돋보인다.

 

이곳의 매력은 한눈에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산책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빛과 그늘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기대하지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숨겨둔 공간의 미학은 낯선 여행지를 탐험할 때 느끼는 설렘과 닮아 있다. 방문객들은 건축가가 의도한 동선을 따라가며 마치 미로를 탐험하듯 공간이 주는 두근거림을 만끽하게 된다.

 


시호재&시차를 설계한 유이화 건축가는 세계적인 거장 이타미 준(유동룡)의 장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아버지가 제주에 남긴 자연 친화적 건축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바람 소리를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였던 아버지의 '풍(風) 미술관'처럼, 유이화는 칠곡의 대지에 마음의 화살을 얹는 사색의 공간을 빚어냈다. 부드럽게 휘어진 외벽과 섬세한 마감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건축적 유산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진화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쟁의 비극이 휩쓸고 간 칠곡의 땅은 이제 건축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던진다. 프랑스와 독일의 신부들, 그리고 재일교포 건축가의 딸이 남긴 건축물들은 경계에 서 있던 이들이 이 땅에 심어놓은 희망의 증거들이다. 칠곡 여행은 이제 위령탑을 도는 엄숙한 행위를 넘어, 부서진 땅 위에 다시 세워진 아름다운 건축물 사이를 거닐며 삶의 방향을 다시 겨누는 여정이 되고 있다. 건축이 보여주는 특별한 미감은 칠곡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기분 좋은 여행의 이유가 되어준다.

 

법정에 선 명품 리스트…김건희 운명, 22일 갈린다

김건희 여사의 ‘매관매직’ 혐의 항소심은 결국 금품 수수와 청탁 사이에 대가관계가 있었는지를 놓고 최종 판단만 남겨두게 됐다.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김 여사 측은 “청탁의 대가라는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고, 특검은 “대통령 배우자의 영향력을 이용한 중대 범죄”라며 원심 유지를 요구했다.서울고법 형사15-3부는 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김 여사의 항소심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을 끝으로 변론은 종결됐고, 항소심 선고는 오는 22일 오후 2시로 지정됐다.김 여사에게 적용된 혐의는 크게 세 갈래다.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고가의 목걸이와 귀걸이를 받았다는 의혹,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으로부터 금거북이와 세한도 등을 받았다는 의혹, 로봇개 사업 관련 인물로부터 고급 시계를 받았다는 의혹이다.특검은 이들 금품이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인사와 사업 편의를 기대한 대가였다고 보고 있다. 특히 2022년 3월부터 5월 사이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이 김 여사에게 1억380만원 상당의 반클리프 아펠 목걸이와 그라프 귀걸이를 건넨 배경에 맏사위 박성근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인사 청탁이 있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또 김 여사가 이배용 전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금거북이와 세한도 265만원 상당, 서성빈씨로부터 받은 바쉐론 콘스탄틴 손목시계 3990만원 상당도 각각 청탁성 금품이라고 봤다. 특검은 대통령 배우자라는 지위가 공직 인사와 국가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김 여사에게 실질적 알선 영향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반면 김 여사 측은 금품과 청탁을 연결할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고 맞섰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주장하는 청탁 내용과 실제 금품 제공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곧바로 알선수재죄 성립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취지다.변호인 측은 1심이 정황과 추정에 기대 유죄를 인정했다고 비판하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김 여사가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특정 인사를 성사시키거나 사업 기회를 제공했다는 구체적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김 여사도 최후진술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공직이나 국가사업을 대가로 무언가를 받은 적도,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자리나 사업 기회를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부인이 부탁한다고 들어주는 분이 아니다”라며 자신이 인사나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특검 주장을 반박했다.다만 김 여사는 국민에게 실망을 준 처신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그는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실망을 드린 것은 사죄한다”면서도 “하지 않은 일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서 재산과 명예 모든 것을 잃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1심 재판부는 특검이 제기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김 여사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목걸이, 시계, 금거북이 등을 몰수했으며 6480만원 추징도 명령했다.항소심 재판부가 들여다볼 핵심은 단순하다. 김 여사가 받은 고가 금품이 사회적 의례 수준의 선물이었는지, 아니면 인사·사업상 도움을 기대한 청탁의 대가였는지다. 또한 대통령 배우자라는 지위만으로 알선 가능성과 영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도 판단 대상이다.특검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징역 7년인 원심 형량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특검은 대통령 배우자의 지위와 사건의 파급력을 고려하면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법정 최고형도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김 여사 측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청탁의 존재, 금품의 대가성, 실제 영향력 행사 여부가 모두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항소심 선고 결과에 따라 김 여사 사건은 다시 한 번 정치권과 법조계의 거센 논쟁을 부를 전망이다. 재판부가 1심처럼 금품과 청탁의 연결성을 인정할지, 아니면 증명 부족을 이유로 판단을 달리할지가 이번 사건의 최대 분수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