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해양 AI 혁명' 선언한 부산... 박형준의 충격적 '해양수도 그랜드 디자인' 실체 공개

 부산시가 새 정부의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 부산 이전 정책에 발맞춰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 부산'이라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다. 박형준 시장은 18일 영도구 동삼혁신지구 해양클러스터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서 열린 '제22차 부산미래혁신회의'에서 세계 상위 5대 해양도시 진입을 목표로 하는 신해양수도 그랜드 디자인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우리 시는 '해양'이라는 강력한 도메인을 가진, 부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고자 한다"며 부산의 해양 도시로서의 정체성과 잠재력을 강조했다.

 

부산시의 핵심 전략은 해양 중추 기능 확대 강화다. 이를 위해 해수부를 포함한 해양 공공기관 통합 이전, 해사 전문법원 설립, 대형 해운선사 유치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박 시장은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히 한 부처의 공간 이동이 아닌 기능의 집적화가 절실하다"며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권한과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해수부 이전 지역으로는 '북항재개발' 지역이 가장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시장은 "해수부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북항 일원이 가장 적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해수부 이전이 확정되고 기능 확충 등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 이전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사 전문법원은 1심 및 1심 단독 항소심을 담당하는 전국 관할 지방법원의 부산 설립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해운 물류 대기업인 HMM의 부산 이전뿐만 아니라 대형 해운선사, 수산·물류 대기업들을 집중 유치하는 계획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해양 기업 이전 지원 TF' 구성을 제안하고, 시 차원의 행정·재정적 지원도 병행할 방침이다.

 

부산시는 해양 첨단 기술 테스트 베드를 선언하며 해양 신산업의 '발굴-사업화-실행'이라는 생태계 파이프라인을 구축해 해양 디지털 경제를 선도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특히 비-오션(B-Ocean) 데이터 특구 조성, 데이터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양식·스마트 항만 등 해양산업 인공지능 대전환(AX, AI Transformation)을 시도하고, 해양과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첨단기술 융합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해양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해양 환경 조성도 주요 과제로 추진한다. 권역별로 국가 해양 생태공원 추진, 민관 협력 바다숲 조성사업 확대 등 해양 생태자원의 미래가치를 극대화하는 정책을 펼칠 예정이다.

 

박 시장은 "새 정부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부산 관련 현안들을 논의하고 있다"며 "현재 추진 중인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북극항로 관련 법안과 통합하거나, 각 법안의 특수성을 인정해 병행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카소에 밀려 자살한 비운의 천재 화가

 1922년 런던의 한 화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화가 존 윌리엄 고드워드는 유서에 "세상은 나와 피카소를 동시에 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단순한 절망의 기록을 넘어, 추상과 파격이 지배하기 시작한 근대 미술사에서 설 자리를 잃은 신고전주의 화가의 고독한 선언이었다. 자살을 수치로 여긴 가족들이 그의 모든 서류와 사진을 불태우면서 고드워드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증발할 뻔했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모더니즘의 그늘에 가려졌던 그의 이름은 7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예상치 못한 계기로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드워드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술의 언어가 급격히 전복되던 격변기였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정립하고 뒤샹이 변기를 예술로 선언하던 시절, 고드워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를 정밀하게 재현하는 신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했다. 그는 자신의 화실을 고대 유물로 채우고 복식의 직조 방식까지 고증할 정도로 학자적 엄밀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평계의 조롱은 가혹했다. 평단은 그를 '대리석 화파'라 부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몰아세웠고, 결국 그는 영국 화단의 공식적인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의 작품 '사포의 시대'나 '폼페이 성문 밖에서'를 보면 그가 추구했던 고전 세계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폼페이의 거리 풍경과 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선 역사적 복원에 가깝다. 고드워드는 자신이 그리는 세계가 실재하는 로마로 이주해 작업을 이어갈 만큼 고전 미학에 투신했다. 하지만 그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대리석의 세계는 거칠고 화려한 현대미술의 질주 앞에서 무력하게 잊혔다. 건강 악화와 외로움 속에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시대와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잊혔던 고드워드를 암흑기에서 건져 올린 것은 1995년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였다. 그가 소더비 경매에서 고드워드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술사는 지워진 화가의 이름을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유명인의 안목이 화제가 되자 대중은 처음 마주하는 이 낯선 화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미술관의 권위나 평단의 비평 없이도 대중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고전적 미학의 위로에 반응했고, 이는 고드워드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고드워드의 명성을 살아있을 때보다 더 널리 퍼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유된 그의 그림들은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지친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대중은 미술사의 허락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그의 이미지를 보관하고 전파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게티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과거 그를 조롱했던 비평가들의 목소리보다 그의 화폭이 전하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드워드가 두려워했던 피카소의 시대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이 예술의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은 그와 피카소를 동시에 담기에 좁았을지 모르나, 시간의 흐름은 결국 두 거장을 나란히 예술의 전당에 올려놓았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화가의 육신은 사라졌어도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증명하려 했던 고대 세계의 찬란함은 캔버스 위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고전의 가치를 믿었던 한 화가의 고집스러운 투쟁은 세기를 건너뛰어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미적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