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

"옷 입으세요" 소리까지 들은 尹…추미애가 공개한 '구치소 CCTV' 속 민낯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당시의 CCTV 영상을 열람한 뒤, "추하디 추한 모습만 확인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서울구치소 현장 검증을 통해 해당 영상을 확인했으며, 추 의원은 이를 통해 본 윤 전 대통령의 행동을 낱낱이 묘사했다.

 

추 의원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상 속 윤 전 대통령은 체포영장을 모면하려 한참 어린 교도관들을 상대로 온갖 술수와 겁박을 늘어놓는 궁색하고 옹졸한 모습뿐이었다"고 직격했다.

 

그가 묘사한 영상 속 상황은 더욱 구체적이다. 집행관이 "한때 대통령이었던 분 아니십니까? 옷을 입으십시오"라고 말하는 부끄러운 장면이 있었음에도, 윤 전 대통령은 "나 검사 27년 했어, 너 검사 해봤어?", "내 몸에 손 대지 마! 이거 불법 체포야", "이거 따르면 앞길이 구만리인 여러분들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며 저항했다고 전했다. 추 의원은 이런 일련의 모습을 "추하디 추한 모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나아가 추 의원은 최근 윤 전 대통령이 "모든 책임은 군 통수권자였던 내게 물으라"며 군인들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내란의 밤에 정작 자신은 불법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들을 재촉해 그들 신세를 망쳐놓고, 이제 와서는 법정 재판 거부와 수사 방해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특히 추 의원은 "내란 부부가 쌍으로 허언증이 심하다"라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며 윤 전 대통령 부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이는 구치소에서 보인 저항의 모습과 최근의 '책임 통감' 발언이 완전히 모순된다는 비판으로, 그의 언행 불일치를 정조준한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 그들은 누구인가? 고문과 배신으로 얼룩진 현대사의 비극

 지난달, 95세의 비전향 장기수 안학섭 씨가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돌아가려다 제지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잊혔던 존재, '비전향 장기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누군가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보내주자"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북한의 선전·선동에 이용될 뿐"이라며 격렬히 비난한다. 2000년 마지막 송환 이후 25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 늙은 공산주의자들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비전향 장기수'는 말 그대로 사상 전향을 거부한 채 수십 년을 감옥에서 보낸 이들이다. 이들을 굴복시키기 위한 '사상 전향 정책'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잔혹성이 극에 달한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다. 1973년, 법무부는 '좌익수형수 전향공작전담반'을 공식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군 정보부대, 경찰 출신 요원들이 투입됐고, 심지어 교도소 내 살인·강도 등 강력범죄자들이 '하수인'으로 동원됐다.진실화해위 보고서 등에 기록된 강제 전향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몽둥이 구타는 기본이었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붓는 물고문,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고문이 공공연히 자행됐다. 정부는 전향자 1명당 10만 원의 성과금을 내걸며 '인간 사냥'을 독려했다. 이 끔찍한 '공작'의 결과, 1973년 400여 명에 달하던 비전향 장기수는 2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전향을 거부한 이들은 독방에 갇혀 온종일 벽만 봐야 했고, 배식, 운동, 치료 등 모든 면에서 차별받는 '유령' 같은 존재였다.1975년에는 출소자를 다시 가둘 수 있는 '사회안전법'까지 만들어졌다. 2년마다 갱신 가능한 '보안감호' 처분은 법원의 견제도 받지 않는 사실상의 무기한 재수감이었다. 이 악법은 1989년에야 폐지되었고, 이후 120여 명의 장기수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들 94명의 복역 기간을 합산하니 무려 2,854년, 1인당 평균 3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고(故) 김선명 씨는 43년 10개월을 복역해 '세계 최장기수'로 기록되기도 했다.이들의 북송은 몇 차례 이뤄졌다. 1993년 인민군 종군기자였던 리인모 씨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북으로 돌아갔고,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63명이 대대적으로 송환됐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당시 송환을 원치 않았거나, 강제로 전향했던 이들이 뒤늦게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2005년, 참여정부 시절 2차 송환이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와 얽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문재인 정부 때 다시 운동이 재개되기도 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동력은 사라졌다.그리고 2024년, 95세 안학섭 씨의 '판문점 돌진'이 다시 불씨를 지폈다. 현재 정부에 공식적으로 북송을 요청한 장기수는 안 씨를 포함해 6명. 모두 80~90대의 고령이다. 최후의 여성 빨치산 박수분(94) 씨, 남파공작원이었던 양원진(96) 씨 등 이들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 그 자체다. 이들 중 고향이 북한인 사람은 단 2명. 나머지는 남쪽에서 태어나 좌익 활동을 하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들이다.한때 30명이 넘었던 2차 송환 희망자는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나 10여 명 남짓 남았다.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이념 대립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늙고 병든 이들의 마지막 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