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하늘의 뜻을 안다는 50년…정선, 작정하고 '세계 무대'에 도전장 던졌다

 정선아리랑의 혼과 멋을 지켜온 '정선아리랑제'가 어느덧 반세기를 꽉 채운 50주년을 맞았다. 사람의 나이 50세를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知天命)'이라 부르듯, 이번 축제는 지난 50년의 역사를 발판 삼아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약을 선언하는 의미심장한 이정표다. '정선아리랑, 세계를 품다'라는 야심 찬 주제 아래, 축제는 단순히 지역의 경사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는 무대로 꾸며졌다. 이러한 자신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정선군은 뮤지컬 '아리아라리'를 통해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과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극찬을 받았고, 에스토니아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도 성공적인 공연을 펼치며 정선아리랑의 세계화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해왔다. 이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린 국제적 성과는 제50회라는 상징적 의미와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정선으로 이끌고 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린 '칠현제례'는 아리랑의 근원 설화 속 인물들의 충절을 기리며 정선아리랑의 뿌리를 되새기는 의식으로, 반세기를 이어온 축제의 깊이를 더했다.

 


이번 축제의 백미는 단연 25개 팀이 참여하는 역대급 규모의 '아리랑 퍼레이드'다. 36사단 군악대의 힘찬 오프닝부터 뮤지컬 '아리아라리' 팀의 화려한 피날레까지, 정선 읍내를 가득 메울 행렬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화합의 장이 될 전망이다. 특히 정선군 9개 읍면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대형 인형과 소품을 들고 선보이는 창작 퍼포먼스는 이번 퍼레이드의 핵심 볼거리다. 이는 정선아리랑제가 관 주도가 아닌, 군민이 주인이 되어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정체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콜롬비아 등 해외 초청팀의 이색적인 공연과 전투무용, 치어리딩 등 다채로운 외부 프로그램이 더해져 풍성함을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할 '플래시몹'은 주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아리랑의 흥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특별한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 50년 역사를 집대성한 특별 역사관부터 각종 포럼과 체험 행사까지, 정선아리랑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축제는 정선아리랑이 세계 속에 당당히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그리고 아들은 지웠다

 갤러리나우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유산: 이어받은 시간(Heritage: Time Inherited)’전은 한국 미술사의 거목들이 남긴 예술적 DNA가 후대로 어떻게 계승되고 변주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4월 2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부자·부녀·모자 등 가족이라는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예술가 가문'의 작가 정신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1세대가 일궈낸 미학적 토양 위에서 2세대와 3세대가 각자의 시대적 언어로 꽃피운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사귀가 어떤 생명력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관통하는 전설적인 가문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점이다. 국민 화가 박수근을 시작으로 아들 박성남, 손자 박진흥으로 이어지는 3대 작가의 작업은 세대를 거치며 정서적 원형이 어떻게 유지되고 혁신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사례다. 여기에 한국 인상주의의 선구자 오지호와 그의 아들 오승우, 오승윤 삼부자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한국 채색화의 거장 천경자와 그의 딸 수미타김의 작업은 모녀라는 특수한 관계 속에서 피어난 예술적 공명과 차별화된 미학적 시도를 극명하게 대조시키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이순심 갤러리나우 대표는 맥을 잇는 행위가 단순한 모방이나 답습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앞선 세대가 구축한 예술적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을 투영해 재해석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계승이자 창조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부모 세대의 명성에 안주하기보다, 그들이 남긴 예술적 유산을 자양분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미술이 가진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예술의 본질적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전시의 구조는 ‘보존과 변주’라는 두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부모 세대가 엄격하게 지켜온 예술적 가치와 기법이 보존의 영역이라면, 자녀 세대가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실험적 시도들은 변주의 영역에 해당한다. 관람객들은 박수근의 소박한 질감이 손자 세대에서 어떻게 빛과 색채의 변주로 치환되었는지, 오지호의 남도 빛깔이 아들들의 작업에서 어떻게 현대적인 향토색으로 재구성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강물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흐르면서도 결국 하나의 바다로 향하는 예술적 여정을 지켜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이러한 예술가 가문의 전통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서양 미술사에서도 브뢰헬, 홀바인, 젠틸레스키, 와이어스 가문처럼 대를 이어 예술적 성취를 이룬 사례는 무수히 많다. 갤러리나우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이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 단위를 통해 어떻게 전수되고 발전해왔는지를 조명한다. 2006년 개관 이후 20년 동안 묵묵히 한국 미술의 현장을 지켜온 갤러리나우의 역사 자체가 이번 전시의 주제인 '유산'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과거의 거장과 현재의 중견, 미래의 신예가 한 공간에서 조우하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한국 미술의 생태계를 상징한다.전시는 단순한 가족 서사를 넘어 한국 현대미술의 구조적 층위를 입체적으로 복원해낸다. 1세대가 척박한 환경에서 일궈낸 미학적 기반은 2세대의 확장을 거쳐 3세대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진화하며 한국 미술의 외연을 넓혀왔다. 갤러리나우는 이번 기획전을 통해 예술가 가문이 지닌 사회적 역할과 그들이 남긴 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재평가하고자 한다. 4월 한 달간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 그리고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새로운 가지들이 어떤 방향으로 하늘을 향해 자라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기록이자 목격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