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인사동에서 꼭 봐야 할 '시간을 엮는' 그림 전시

 인사동 노화랑에서 신인 작가 김란의 첫 개인전 '드로우 백(Throw back)'이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도시라는 친숙한 대상을 모티프로,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 감정의 지층을 파고드는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선보이는 자리다. 작가는 색과 선의 무수한 중첩을 통해 도시 공간을 새롭게 해석한다.

 

김란의 캔버스는 두 가지 시선을 요구한다. 멀리서는 질서정연한 도시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한 걸음 다가서는 순간 캔버스를 가득 메운 실오라기 같은 선들의 압도적인 밀도와 마주하게 된다. 이 풍경들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작가가 전국을 다니며 마주한 실제 장소들에서 비롯됐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이라는 필터를 거친 도시의 모습은 캔버스 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풍경으로 재탄생한다.

 


작품 속에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빛의 섬세한 표현과 건물들의 밀도 조절을 통해 그 공간을 스쳐간 무수한 삶의 흔적과 이야기를 암시한다. 특히 하늘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듯한 '버드뷰' 구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노스탤지어)에 젖게 만든다.

 

작업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행과 같다.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린 뒤 모르타르 미디엄을 섞어 질감을 만들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수만 번의 선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린다. 푸른색, 붉은색, 혹은 흑백의 단색으로 쌓인 색층은 특정 시간대의 빛을 머금은 듯, 기억 저편에 남은 감정의 잔상을 화면 위로 불러온다.

 


한 미술 전문가는 김란의 작업을 두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하나의 직물처럼 엮어내는 치유의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캔버스의 측면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선의 흔적들은 이 작품을 위해 작가가 쏟아부은 엄청난 시간과 노동의 깊이를 묵묵히 증명한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관람객 각자의 마음속에 봉인된 기억을 꺼내 보는 계기가 되고, 따뜻한 위로의 상징으로 다가가기를 희망한다. 이번 전시는 도시라는 공간에 스며든 시간의 결을 따라 작가의 감각과 관람객의 기억이 어떻게 조우하고 공명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250회' 성추행 교장, 형량 '반토막'.."합의하면 끝"

초등학생 제자 10명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추행과 학대를 저질러 사회적 공분을 샀던 전직 초등학교 교장이 항소심에서 뜻밖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1심에서 징역 8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으며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손을 일부 들어주며 형량이 정확히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아동 성범죄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법원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우선시했다는 논란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거센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지난 19일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교장 A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심이 선고했던 징역 8년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비록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 등의 보안처분은 유지되었으나 핵심인 징역형의 무게가 가벼워진 점에 대해 피해 가족과 시민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사건의 내막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2022년 9월 한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한 A씨는 이듬해인 2023년 4월부터 퇴임 직전인 12월 말까지 파렴치한 범행을 이어갔다. 범행 장소는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안 교장실과 운동장 등이었다. 피해를 본 학생들은 이제 겨우 만 6세에서 11세 사이의 어린 여학생들이었으며 그 인원만 10명에 달했다. 검찰 수사 결과 A씨가 위력으로 아이들을 추행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준 행위는 무려 250회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이 끔찍한 사건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피해 학생들과 그 친구들의 믿기 힘든 용기 덕분이었다. 어린 학생들은 교장의 반복되는 이상 행동을 감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아이들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서로의 피해 사실을 공유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심지어 교장의 범행 장면을 직접 휴대전화로 촬영해 증거를 수집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아이들이 직접 모은 결정적 증거를 바탕으로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면서 비로소 수사의 물꼬가 트였다.1심 재판부는 이러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해 학생들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이 있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1심은 검찰이 기소한 250회의 범행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며 교육자로서의 지위를 망각한 채 어린 제자들을 유린한 A씨에게 징역 8년의 중형을 내렸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시각은 엄격한 법리 해석에 집중되었다.항소심 재판부가 형량을 절반으로 깎아준 결정적 이유는 공소사실의 특정 여부였다. 검찰은 피해 아동들이 거의 매일 혹은 일주일에 수차례 피해를 봤다고 진술한 것을 바탕으로 전체 범행 횟수를 산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 중 180여 회에 달하는 범행에 대해 날짜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막연한 진술만으로 범행 횟수를 기계적으로 계산해 기소하는 것은 피고인이 자신을 변호할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취지다. 결국 재판부는 해당 부분에 대한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더불어 재판부는 A씨가 일부 피해 아동 측과 합의에 성공했거나 피해 회복을 위해 형사 공탁을 한 점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장기간 반복된 범행의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법적으로 공소사실이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감형의 핵심 명분이 된 셈이다. 법원은 법치의 원칙을 강조했으나 피해자 측과 시민 사회는 아이들이 직접 증거를 수집할 정도로 고통받았던 명백한 사실이 법 기술적인 이유로 희석되었다며 분노하고 있다.이번 판결을 접한 누리꾼들은 SNS를 통해 아이들이 목숨 걸고 촬영한 증거가 있는데도 형량이 줄어드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초등학생들이 날짜를 정확히 기억 못 한다고 해서 범죄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냐며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의 아동 성범죄는 단순한 폭력을 넘어 아이들의 평생에 걸친 정서적 살인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사법부의 온정주의적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현재 A씨는 교직에서 물러난 상태이지만 이번 판결로 인해 아동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법 감정과 실제 법 집행 사이의 커다란 괴리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피해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가해자의 형량은 법률적 해석의 벽 뒤에서 반토막이 났다. 용기 내어 증거를 모았던 어린 학생들의 노력이 이번 판결로 인해 퇴색되지 않도록 아동 범죄에 대한 공소사실 특정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급해 보인다.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카메라를 들어야 했던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법원이 내린 방어권 존중이라는 판결이 누구를 위한 법치인지 묻게 만든다. 교육계와 법조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내 성범죄 근절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과 피해자 중심의 사법 정의 실현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