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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부사관 모집 1분기 현황 '계획 미달'..부족률 63%

 최근 장교 인기도 떨어지고 있는데, 육군 부사관 야전부대에 모집계획에 반도 못 채워 싸울 군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23일 군 당국은 육군이 올해 1분기 동안 실시한 부사관 모집에서 계획 대비 약 63%가 부족해 예상을 크게 밑도는 결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강원도 철원, 양구, 경기도 파주시 등의 최전방 부대에서의 부대 정원 미달 현상이 두드러졌다. 전방 부대 모집률이 1군단은 42.7%, 2군단은 35%, 3군단은 36.4%, 5군단은 38.3%의 모집률에 그쳤다. 

 

수도방위사령부는 48.5%, 수도군단 모집률은 38.5%로 조사됐으며, 동원전력사령부는 38.6%, 군수사령부는 26.4%, 육군본부와 국방부 직할부대는 11.2%로 조사됐다.

 

육군에서 유일하게 군에 대한 자긍심·사명감·위험근무수당 등이 있는 특전사의 부사관 모집만 161.5%로 초과했다.  

 

현재 육군은 상비병력 50만 명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부사관과 장교 등 간부 병력을 확대해 나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소 인원조차 확보되지 못할 경우, 안보 공백이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문가들은 군에 대한 비전 제시와 함께 급여 및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피카소에 밀려 자살한 비운의 천재 화가

 1922년 런던의 한 화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화가 존 윌리엄 고드워드는 유서에 "세상은 나와 피카소를 동시에 담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단순한 절망의 기록을 넘어, 추상과 파격이 지배하기 시작한 근대 미술사에서 설 자리를 잃은 신고전주의 화가의 고독한 선언이었다. 자살을 수치로 여긴 가족들이 그의 모든 서류와 사진을 불태우면서 고드워드는 역사 속에서 완전히 증발할 뻔했다. 하지만 20세기 내내 모더니즘의 그늘에 가려졌던 그의 이름은 7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예상치 못한 계기로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드워드가 활동하던 시기는 미술의 언어가 급격히 전복되던 격변기였다. 피카소가 입체주의를 정립하고 뒤샹이 변기를 예술로 선언하던 시절, 고드워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를 정밀하게 재현하는 신고전주의 화풍을 고집했다. 그는 자신의 화실을 고대 유물로 채우고 복식의 직조 방식까지 고증할 정도로 학자적 엄밀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시대를 역행한다는 비평계의 조롱은 가혹했다. 평단은 그를 '대리석 화파'라 부르며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몰아세웠고, 결국 그는 영국 화단의 공식적인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그의 작품 '사포의 시대'나 '폼페이 성문 밖에서'를 보면 그가 추구했던 고전 세계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폼페이의 거리 풍경과 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선 역사적 복원에 가깝다. 고드워드는 자신이 그리는 세계가 실재하는 로마로 이주해 작업을 이어갈 만큼 고전 미학에 투신했다. 하지만 그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대리석의 세계는 거칠고 화려한 현대미술의 질주 앞에서 무력하게 잊혔다. 건강 악화와 외로움 속에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시대와의 불화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잊혔던 고드워드를 암흑기에서 건져 올린 것은 1995년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였다. 그가 소더비 경매에서 고드워드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을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술사는 지워진 화가의 이름을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유명인의 안목이 화제가 되자 대중은 처음 마주하는 이 낯선 화가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미술관의 권위나 평단의 비평 없이도 대중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고전적 미학의 위로에 반응했고, 이는 고드워드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고드워드의 명성을 살아있을 때보다 더 널리 퍼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유된 그의 그림들은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지친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대중은 미술사의 허락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그의 이미지를 보관하고 전파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게티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과거 그를 조롱했던 비평가들의 목소리보다 그의 화폭이 전하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드워드가 두려워했던 피카소의 시대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이 예술의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은 그와 피카소를 동시에 담기에 좁았을지 모르나, 시간의 흐름은 결국 두 거장을 나란히 예술의 전당에 올려놓았다.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화가의 육신은 사라졌어도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증명하려 했던 고대 세계의 찬란함은 캔버스 위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고전의 가치를 믿었던 한 화가의 고집스러운 투쟁은 세기를 건너뛰어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미적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