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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격정적 기자회견... 눈물로 털어낸 가족 갈등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가 아버지 박준철 씨의 사문서 위조 및 관련 고소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 박세리는 자신이 이끄는 박세리희망재단이 아버지를 고소한 배경을 설명하며, 그로 인해 가족 간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해 부친이 참여한 사업에서 재단 도장 위조 사건을 파악하고 경찰에 신고한 바 있다. 박세리는 "이 사건이 가족 사이의 문제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으며, 이를 통해 오랫동안 가족 내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임을 시사했다. 그는 자신이 이사장으로서 고소를 결정한 과정을 설명하며, 개인적인 사업 문제와 재단 활동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의 질문 중 한 기자의 직접적인 감정적 발언에 박세리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크게 흔들린 일이다"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의견 차이를 강조하며, 그가 가는 길과 자신의 방향을 확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세리의 회견은 골프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인격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대한 온라인의 응원과 위로 메시지는 빠르게 퍼져나가며, 그의 용기와 결단에 경의를 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만 총통의 '미션 임파서블'…에스와티니 극비 방문

 중국의 삼엄한 외교적 포위망을 뚫고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유일한 수교국 에스와티니로 비밀리에 출국했던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왔다. 대만 현지 매체들은 6일 보도를 통해 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던 라이 총통의 이번 왕복 비행 과정을 상세히 조명하며, 불가능에 가까웠던 외교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배경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라이 총통은 대만을 떠날 때와 동일하게 에스와티니 왕실 소유의 에어버스 A340 전용기를 탑승하고 귀환길에 올랐다. 4일 저녁 현지를 출발한 전용기의 항로는 중국의 입김이 닿는 모리셔스 등 주변국들의 비행정보구역을 철저히 우회하도록 설계되었다. 기체는 동쪽 방향으로 기수를 틀어 광활한 인도양 상공을 가로지른 뒤, 호주 멜버른 관할 구역을 거쳐 북쪽으로 향하는 우회 항로를 택해 5일 오전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무사히 안착했다.출국 당시에는 보안 유지를 위해 최단 거리를 비행했지만, 이미 일정이 공개된 귀국길에서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비행 거리가 대폭 늘어나는 우회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항로 추적 사이트를 통해 전용기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대만의 누리꾼들은 기종의 항속 거리 한계를 우려하며 호주 등지에서 중간 급유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전용기는 육지와 인접해 비행해야 한다는 통상적인 규칙을 깨고 인도양을 횡단하는 직항 비행에 성공했다.항공 전문가들은 이번 비행의 성공 요인으로 4개의 엔진을 장착한 에어버스 A340 기종의 특성을 꼽았다. 해당 전용기는 과거 대만의 국적 항공사인 중화항공이 운용하다가 2015년 에스와티니 측에 매각한 기체로, 이후에도 대만 측이 꾸준히 정비와 관리를 전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황타이린 창정기독교대 교수는 4발 엔진 구조 덕분에 분쟁 소지가 있는 공역을 최대한 피해 비행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국제민간항공기구의 규정에 따르면 엔진이 2개인 쌍발기의 경우 비상 상황 발생 시 일정 시간 내에 인근 공항에 비상 착륙할 수 있는 항로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엔진이 4개인 A340은 이러한 장거리 쌍발기 운항 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아 대양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과감한 비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일반 여객기와 달리 탑승 인원과 화물이 적은 전용기의 특성상, 이륙 중량 제한 내에서 연료를 최대치로 주입하여 항속 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린 점도 주효했다.앞서 라이 총통은 지난달 에스와티니 국빈 방문을 추진했으나, 중국의 영향권에 있는 인접 국가들이 영공 통과를 거부하면서 일정이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이달 2일 대만에 입국한 에스와티니 왕실 특사기의 편을 빌려 극비리에 출국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유력 매체 르파리지앵 등 주요 외신들은 거대 국가 중국의 봉쇄망을 뚫어낸 대만의 이번 외교적 행보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빗대며 상징적인 성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