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나혜석의 사진첩이 열리자, 이중섭·박수근·천경자의 삶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위, 붉고 위태롭게 떨리는 글씨 하나가 새겨져 있다. '羅(라)'.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은 사진 속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수전증으로 고생하던 말년, 붓 대신 떨리는 손으로 남긴 이 흔적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절박하게 확인하려 했던 마지막 몸부림처럼 보인다. 2024년 개관 10주년을 맞은 수원시립미술관이 바로 이 나혜석의 유일한 유품인 '나혜석 사진첩'을 처음으로 전면 공개한다. 오는 26일 막을 올리는 한국 근현대미술전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을 통해서다.

 

2017년 유족의 기증으로 미술관 품에 안긴 이 사진첩은 단순한 사진 모음집이 아니다. 지난 2년간의 정밀한 상태 조사와 과학적 보존 처리, 그리고 기초 연구를 거쳐 비로소 대중 앞에 서게 된 역사의 기록 그 자체다. 가죽 표지로 된 앨범의 검은 내지 위에는 총 96장의 사진과 101건에 달하는 나혜석의 자필 설명이 남아있다. 건강이 악화되던 생애 후반기에 정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첩의 내용은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다. 남편 김우영의 일본 유학 시절부터 그녀가 홀로 해인사에 머물던 1930년대까지,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이 일정한 규칙 없이 흩어져 있다. 두 장의 풍경 사진을 제외한 대부분은 인물 사진이며, 그중 상당수는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어 나혜석이 시대의 한파 속에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애틋한 그리움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이라는 제목처럼, 사진첩이라는 머무르는 순간을 통해 그 안에 담긴 나혜석의 흐르는 마음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사진 속에 붙잡힌 찰나는 영원히 머무르지만,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나혜석의 사진첩에서 시작해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12인의 작가들의 작품 세계로 확장된다. 첫 번째 장 '한 예술가의 사진첩'에서는 사진첩 원본과 함께 지난한 연구 및 보존 처리 과정을 공개하며 하나의 아카이브가 어떻게 전시로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어 두 번째 장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 순간으로부터'에서는 가족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던 박수근, 이중섭 등의 작품을 통해 나혜석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그 감정을 연결한다. 세 번째 장 '여정의 어딘가에서'는 세계 일주와 해인사 여행 등 나혜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배운성, 이응노 등 동시대 작가들의 여정과 교차시키고, 마지막 장 '나를 잊지 않는 행복'에서는 여행을 통해 예술적 변주를 꾀했던 박래현과 천경자의 작품을 조명한다. 그룹 몬스타엑스의 민혁이 오디오 가이드 재능기부로 참여해 나혜석과 동시대 작가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며 관람의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미국, 우크라이나 자폭 무인정 직접 만든다

 미국 오리건주에 본사를 둔 특수목적선 제조사 리콘크래프트가 우크라이나 방산업체 유포스와 손잡고 자폭 무인정 ‘마구라’ 시리즈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한다. 양사는 최근 워싱턴DC 소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무인수상정 제조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하고, 부품 공급부터 생산 설비 및 전문 인력 공유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승인을 얻어 현지 설계 무기를 미국에서 양산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콘크래프트는 오리건과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을 가동해 연간 수천 척 규모의 생산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마구라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해군력이 절대적으로 열세였던 우크라이나가 전세를 뒤집기 위해 개발한 비대칭 전력이다. 약 7.6m 길이에 770kg 이상의 폭발물을 싣고 560km를 항해할 수 있는 이 무인정은 척당 가격이 50만 달러 미만으로 매우 저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파괴력을 앞세워 러시아 흑해함대의 주요 군함과 항만 시설을 타격하며 적의 활동 범위를 크게 위축시켰다. 자폭 공격뿐만 아니라 기뢰 제거, 잠수함 탐지, 드론 발사 등 다목적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미군의 시선을 사로잡은 요인이다.미국이 우크라이나산 무기를 직접 생산하기로 한 배경에는 최근 중동 지역에서 겪은 실전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미군은 이란과의 충돌 과정에서 고가의 정밀 유도 미사일을 대량으로 소모하며 경제적 부담을 느껴왔다. 반면 저렴한 소모성 무기를 대량으로 투입해 적의 핵심 시설을 마비시키는 우크라이나식 전술은 비용 대비 효율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미군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 인근 이란 해군 기지 공격에 자폭 무인정을 투입하며 이러한 전술의 유효성을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협약은 단순한 기체 생산을 넘어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실전 데이터와 운용 노하우까지 미국으로 이전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유포스는 해상 무인체계뿐만 아니라 공중과 지상을 아우르는 드론 기술, 자율운항 소프트웨어, 지휘통제 시스템을 미국 측에 제공하기로 했다. 수년간의 실전을 통해 다듬어진 작전 개념이 미국 방산 체계와 결합하는 셈이다. 이는 기술 유출을 극도로 경계해 온 우크라이나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내린 전략적 결단으로 풀이된다.미 국방부는 향후 수년간 무인 및 자율 무기 체계 확보에 수백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산 드론 12종에 대한 생산 검토를 마쳤으며, 이번 마구라 생산은 그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방산 대기업들도 앞다투어 항속거리와 파괴력을 높인 무인수상정 개발에 뛰어들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에서 성능이 검증된 모델을 미국 내 안정적인 제조망과 결합하는 방식은 향후 서방 국가들의 무기 조달 표준 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다.양국의 무기 협력은 향후 패트리엇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현지 생산 논의로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은 첨단 방어 무기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는 실전에서 다듬어진 저비용 공격 무기와 전술을 제공하는 상호 보완적 방산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마구라의 미국 생산은 우크라이나의 창의적인 전쟁 경험이 세계 최강 미군의 전력을 보완하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저가형 무인 무기가 지배하는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 속에서 양국의 밀착 행보는 글로벌 안보 지형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