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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표심 흔들리나…교황·트럼프 대립 격화

 교황 레오 14세가 인공지능(AI)의 무분별한 확산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내부에서 이례적인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바티칸이 AI에 대한 국제적 감독 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첫 회칙을 발표한 직후, 백악관 핵심 인사들이 극명하게 엇갈린 평가를 내놓으며 충돌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기술 패권과 규제 완화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노선이 종교적·윤리적 가치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발생한 복잡한 정치적 지형을 여실히 보여준다.

 

행정부 내 갈등의 중심에는 JD 밴스 부통령과 더그 버검 내무장관이 서 있다. 가톨릭 신자이자 실리콘밸리와의 가교 역할을 해온 밴스 부통령은 교황의 메시지를 도덕적 리더십의 정수라고 치켜세우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면 기업가 출신의 버검 장관은 교황이 기술 영역에 개입하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각을 세웠다. 한 지붕 아래 두 각료가 교황의 발언을 두고 공개 석상에서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내재된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교황의 이번 회칙은 트럼프 대통령이 AI 안전 검토 절차를 담은 행정명령을 보류하며 규제 철폐 기조를 명확히 한 시점에 나와 더욱 파장이 컸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력을 이유로 규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으나, 교황은 AI가 노동자를 대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정반대의 논리를 펼쳤다. 특히 회칙 발표 현장에 트럼프 행정부와 대립해온 AI 기업 관계자가 동석했다는 점은 바티칸이 미국의 기술 정책에 대해 조직적인 견제에 나섰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양측의 대립은 비단 기술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레오 14세 교황은 취임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과 대외 군사 노선을 꾸준히 비판해왔으며, 트럼프 대통령 역시 교황을 좌파 편향적이라고 공격하며 거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발표된 AI 회칙은 양측의 갈등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교황은 행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외교적 결례로 규정하며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갈등이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가톨릭 유권자들의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가톨릭 층의 과반 지지를 얻으며 승기를 잡았으나, 교황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이들의 지지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낙태 등 문화적 이슈에서는 여전히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만, 교황을 향한 대통령의 조롱 섞인 발언이 반복될 경우 중도 성향 가톨릭 신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교황의 AI 경고는 기술 윤리 논쟁을 넘어 미국의 국내 정치와 선거 전략을 뒤흔드는 거대한 변수로 부상했다.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 등 가톨릭 비중이 높은 경합 지역의 후보들은 대통령과 교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기술 패권을 향한 백악관의 질주와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는 바티칸의 제동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 도덕적·정치적 대결의 결과가 미국의 미래 기술 지형과 권력 구도를 재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천관 40년, 빛으로 깨어난 예술 공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개관 40주년을 기념해 미술관의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자연과 예술을 하나로 묶는 'MMCA 과천 40주년: 빛의 상상들'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1986년 청계산 자락에 터를 잡은 과천관은 지난 40년 동안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기록해온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빛을 매개로 미술관의 건축적 구조와 주변 자연경관을 새롭게 연결하여 관람객들에게 '머무르고 체험하는 장소'로서의 미술관을 제안한다. 관람객들은 로비에서 시작해 야외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공간과 시간, 기억이 교차하는 입체적인 예술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전시의 도입부인 로비와 브리지 공간은 '광경'이라는 테마 아래 과천관의 건축미를 극대화한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필립 파레노의 전광판 작품 '마퀴'는 리드미컬한 조명의 점멸을 통해 관람객에게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설렘과 기다림의 순간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3층 브리지에서는 김아영 작가가 플랫폼 노동과 알고리즘 시대를 신화적 서사로 풀어낸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선보인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실제 과천의 풍경과 디지털 이미지가 겹쳐지는 이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며 관람객을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새롭게 단장한 2원형전시실에서는 빛 자체를 예술적 도구로 활용해온 세계적 거장들의 수작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빛의 거장 제임스 터렐의 '상상들, 넓은 직사각형의 곡면 유리'는 소장 이후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는 작품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는 빛의 색채를 통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호흡으로 채운다. 칠레 작가 이반 나바로는 네온과 거울을 이용해 무한히 확장되는 가상의 깊이를 만들어내며, 9·11 테러 등 역사적 사건이 남긴 심리적 공백과 기억의 흔적을 빛의 언어로 조용히 소환한다.미술관 외부의 조각공원은 '머무는 자리' 프로젝트를 통해 관객 친화적인 휴식처로 거듭났다. 김하늘, 방효빈, 임정주, 하지훈, 황형신 등 5명의 작가는 기존의 '바라보는 조각'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직접 앉고 기대며 작품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했다. 폐스티로폼을 재활용한 소파부터 한국의 돗자리 문화에서 착안한 쉼터까지, 이들 신작은 조각공원의 역사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덧입힌다. 관람객들은 작품에 머물며 주변의 숲과 하늘, 그리고 자신의 움직임이 투영되는 풍경 속에서 예술과 일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이번 40주년 프로젝트는 전시 외에도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병행한다. 이우환, 제니 홀저 등 조각공원을 빛낸 거장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상영회 '조각공원의 예술가들'을 비롯해, 어린이미술관 교육 프로그램과 밤의 미술관 탐사 등이 마련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을 형성한다. 또한 참여형 이미지 아카이브 '장면들'과 특별 강연 시리즈는 지난 40년의 유산을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미래적 가치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과천관이 한국 현대미술의 수많은 실험을 품어온 역사적 공간임을 강조하며, 이번 프로젝트가 과거의 유산을 발판 삼아 새로운 40년을 상상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빛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번 전시는 과천관의 건축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관 40주년을 맞은 미술관의 변신은 올여름과 가을,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깊은 울림과 휴식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