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청빈의 상징' 프란치스코 교황 "장식 없는 관에 잠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선종했다. 교황의 사인은 뇌졸중에 의한 혼수상태와 심부전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8세의 고령에 폐렴으로 5주간 입원한 뒤 퇴원했다가, 약 한 달 만에 선종했다. 교황의 건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어 선종 직전인 20일에도 미국 부통령 JD 밴스와의 면담과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강복 등의 일정을 소화했지만, 결국 뇌졸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적으로 '소외된 자들의 벗'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선종 이후 바티칸은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교황은 전통적인 교황의 묘지인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서 묻히기를 원했다. 이는 교황의 평소 검소한 생활과 소박한 신앙을 상징하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교황은 자신의 유언장에 “무덤은 땅속에 있어야 하며, 소박하고 장식 없이 ‘프란치스쿠스’란 비문만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비문은 교황의 라틴어 이름인 ‘프란치스쿠스’를 의미하며, 그의 겸손한 성격을 반영한 것이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로마의 4대 교황 대성전 중 하나로, 매우 중요한 종교적 상징성을 지닌 성당이다. 이곳에 안장된 교황은 극히 드물며, 가장 최근에 안장된 교황은 1669년의 클레멘스 9세였다. 교황은 이 성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으며, 재임 기간 중 100회 이상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2023년 멕시코 TV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산타 마리아 마조레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앙을 드러내며 이곳에 안장되기를 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사상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 출신의 교황이며, ‘로마의 이방인’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다른 교황들과는 다른 선택을 많이 했다. 특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과거 이민자와 가난한 이들이 거주했던 지역인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교황이 평소 검소한 생활을 추구하며, 사도궁이 아닌 교황청 내 방문자 숙소인 산타 마르타에서 지내기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교황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장례 절차는 22일(현지시간) 추기경들이 모여 논의할 예정이다. 장례식은 선종 후 4~6일 이내인 25일부터 27일 사이에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관은 23일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질 예정이며, 교황청은 그의 거처인 산타 마르타 예배당에 시신을 옮기고 이를 아연을 덧댄 목관에 안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유언에 따라, 전통적인 교황들의 장례 절차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역사적으로 교황들의 관은 편백나무, 아연, 느릅나무로 만들어진 삼중관에 안치되었으나, 교황은 한 개의 아연과 나무로 된 관에 안치되기를 원했다. 그의 장례는 전통을 따르지 않고, 검소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교황에 즉위한 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교황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사랑과 포용'을 강조했으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자들, 이민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선종은 전 세계적으로 큰 슬픔과 애도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교황의 선종 후, 추기경들은 교황의 유언을 존중하며, 그의 장례 절차와 후속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박한 선택은 그가 추구했던 신앙과 가르침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그의 삶과 유산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젠지 혁명' 2년 후, 방글라데시가 투표로 내린 심판

 2024년 학생 주도 시위로 15년간 이어진 셰이크 하시나의 철권통치가 막을 내린 방글라데시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12일, 1억 2천만 명의 유권자들은 15년 만에 진정한 의미의 정권 교체를 이룰 첫 총선에 참여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이날 전국 4만 2천여 개 투표소는 이른 아침부터 유권자들로 붐볐다. 외신들은 2008년 이후 처음 투표에 참여한다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전하며, 과거와 달리 훨씬 자유롭고 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투표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95만 명이 넘는 군경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치된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 폭력 사태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순조롭게 선거가 치러졌다.이번 선거는 시위 유혈 진압의 책임으로 축출된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가 이끌던 아와미연맹(AL)이 정당 등록 취소로 참여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옛 제1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의 압승이 일찌감치 예견된 선거였다. BNP는 300개의 지역구 중 292곳에 후보를 내며 정권 장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BNP가 승리할 경우, 17년간의 영국 망명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말 극적으로 귀국한 타리크 라흐만 총재 대행이 차기 총리직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그는 빈곤층 지원, 총리 임기 10년 제한, 부패 척결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변화를 갈망하는 민심을 파고들었다.이번 총선과 함께 총리 임기를 2연임으로 제한하고 단원제 의회를 양원제로 바꾸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도 동시에 진행됐다. 이는 하시나 정권과 같은 장기 독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과도정부를 이끌어온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는 "악몽을 끝내고 새로운 꿈을 시작하는 날"이라며 투표의 의미를 강조했다.국제 사회는 이번 선거가 방글라데시 민주주의 재건의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주목하고 있다. 다만, 압승이 예상되는 BNP 역시 과거 부패와 세습 정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만큼, 국민적 개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