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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껐더니 '요금 폭탄'…할인 끝나자 14.4% 폭등한 전기료의 역습

 지난 8월, 0.1% 하락하며 잠시 안정되는 듯했던 생산자물가가 한 달 만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4% 상승하며 다시 상승세로 전환했다. 잠시나마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던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이번 상승의 이면에는 우리 생활과 직결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상승세 전환은 특정 품목의 가격 급등이 지수 전체를 끌어올린 결과로 분석되어,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 압박은 수치보다 더욱 클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단연 전기요금이었다. 주택용 전력 요금이 전월 대비 무려 14.4%나 급등하며 전체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이는 새로운 요금 인상이 아닌, 일종의 '기저효과'에 따른 결과다. 정부가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7~8월, 서민들의 냉방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 구간 완화 조치가 지난달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할인 혜택이 사라지자 정상화된 요금이 마치 큰 폭으로 인상된 것처럼 지수에 반영된 것이다. 여름 내내 에어컨 가동으로 늘어난 전기요금 고지서에 한숨 쉬었던 가정이, 이제는 할인 종료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난 셈이다.

 


밥상 물가 역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농림수산품은 전월 대비 0.4% 오르며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특히 서민들의 주식인 쌀 가격이 4.7%나 올랐고, 쌈 채소의 대표 격인 상추는 무려 38.9%나 폭등하며 가계에 큰 부담을 안겼다. 육류 가격도 심상치 않았다. 명절 수요가 몰리면서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각각 6.9%, 3.3%씩 상승했다. 한국은행은 쌀의 경우 지난해 생산량 감소 여파가 이어진 데다 햅쌀이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전이라는 시기적 요인이 겹쳤고, 육류는 명절 특수가 가격을 밀어 올린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매일 마주하는 식탁 위 먹거리들의 가격이 일제히 오르면서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 비용 부담도 커졌다. 서비스 부문 물가 역시 전월 대비 0.4% 상승했는데, 여기에는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이동통신 요금 등이 포함된 정보통신 및 방송 서비스 요금 상승(4%)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생산 단계를 넘어 국내 시장에 공급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전반적인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국내공급물가지수 역시 0.1% 상승했다. 원자재를 가공한 중간재(0.2%)와 소비자가 최종적으로 구매하는 최종재(0.3%) 가격이 모두 올랐다는 것은, 생산자 단계에서 시작된 가격 인상 압력이 시차를 두고 소비재와 서비스 가격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앞으로 소비자물가 역시 상승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불길한 신호로 해석된다.

 

"APEC에 얽매이지 않겠다"…정부, 관세 협상 '마이웨이' 선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불과 이틀 만에 다시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며 한미 관세 협상이 중대 분수령을 맞았다. 최고위급 협상 책임자들이 이처럼 이례적으로 단기간에 재출국한 것은, 실무 차원의 조율을 넘어 정치적 결단만이 남은 최종 담판 국면에 돌입했음을 시사한다. 양국이 남은 한두 가지 핵심 쟁점을 두고 벌이는 막판 줄다리기가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이번 방미 결과가 수개월간 이어진 협상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통상 협상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왕복 외교'는 그만큼 현안이 시급하고 민감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이번 협상은 이달 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는 시점을 앞두고 있어 더욱 주목받는다. APEC은 양국 정상이 만나 협상 타결을 공식화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로 꼽히지만, 정부는 국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시한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실장이 "서두르지 않겠다"고 직접 밝힌 것은, 협상 타결 자체보다 내용의 실리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는 APEC이라는 시한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되, 불리한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최종 마지노선을 미국 측에 전달하는 전략적 메시지로 풀이된다.현재 협상 테이블 위에는 양측이 쉽게 물러설 수 없는 핵심 현안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쟁점에서 합의를 이뤘다는 낙관론과, 여전히 좁히기 힘든 이견이 존재한다는 신중론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협상이 사실상 최종 단계에 접어든 만큼, 남은 것은 상호 간 양보의 폭을 결정하는 정치적 수 싸움이다. 양국 모두 자국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며 마지막까지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번 대면 협상에서 극적인 타결이 이루어질지 혹은 다시 평행선을 달릴지 결정될 것이다.이번 관세 협상의 결과는 단순히 관세율 조정에 그치지 않고, 지난 8월 한미정상회담 당시 합의되었으나 공개되지 않았던 '비공개 경제 협력 패키지'의 향방과도 직결된다.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경우, 이 패키지까지 함께 공개되며 양국 경제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성과로 포장될 수 있다. 하지만 협상이 지연되거나 결렬될 경우, 정부는 대미 외교력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며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협상 타결의 열쇠를 쥔 두 책임자의 어깨에 그만큼 무거운 짐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