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AI 시대 필독서, ‘데카르트의 아기’가 말하는 인간다움의 조건

 근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생전에 지니고 다녔던 실물 크기의 여자아이 인형 ‘프란신’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다. 데카르트가 다섯 살에 요절한 딸의 이름을 붙여 깊은 애정을 보였던 이 인형은, 어느 항해 중 선장이 사람을 닮았지만 인간이 아닌 ‘프란신’을 발견하고 불쾌한 기분에 바다에 던져버린 일화로 유명하다. 인간과 닮았으나 인간이 아닌 존재가 주는 불쾌감, 일명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은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을 토대로 최근 새롭게 번역 출간된 <데카르트의 아기>는 ‘인간성’의 조건과 기원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이 책은 2006년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절판됐다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인간 정신의 독특함과 본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금 독자들을 찾아왔다. 저자는 예일대학교 심리학과의 폴 블룸 교수로, 발달심리학과 언어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16세기 데카르트가 제기한 ‘이원론’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한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단순한 기계로 보면서 오직 인간만이 영혼, 즉 ‘생각하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명언은 인간 이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확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간만의 ‘정신’을 재정의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블룸 교수는 인간다움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나선다. 그가 제안하는 가설은 인간이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정신과 물질’의 이원적 사고 체계를 내재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엄 촘스키가 언어 능력이 선천적이라고 주장했듯이, 인간은 사회성과 도덕성 역시 선천적으로 갖추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논증의 핵심으로 ‘아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아기들은 언어를 배우기 이전에도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지닌다. 여러 심리 실험을 통해 17개월 된 아기가 주사를 맞는 다른 아이를 보고 아파하는 모습을 따라하는 관찰 사례, 그리고 18개월 된 아이들이 그림과 실제 사물을 연결지어 이해하는 실험 결과 등이 소개된다. 이를 통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마음을 읽는 존재’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다만 블룸 교수의 해석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진 않을 전망이다. 연구 대상인 ‘아기’의 범주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인지 발달이 크게 다른 영아와 유아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아기들이 타인에게 보이는 공감이나 관심이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양육과 환경의 산물일 가능성도 높다. 완전한 ‘진공 상태’의 아기를 연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블룸 교수는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도덕성과 정신의 선천적 기반을 밝히려는 노력에 의미를 둔다.

 

또한, 창조론이나 인간 영혼에 관한 전통적 신화를 거부하는 저자의 입장은 오늘날 일부 독자에게 다소 낯설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 고유성’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고민은 AI가 급속히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부심과 존재론적 의미를 재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큰 흥미와 통찰을 제공한다. 하버드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는 이 책을 “보석 같은 책”이라 칭하기도 했다.

 

책 전반에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도 녹아 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동생 하워드, 연구 동료이자 아내인 캐런 윈 예일대 교수, 그리고 두 아들과의 일상이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 있어 학술서임에도 인간미 넘치는 읽을거리를 선사한다.

 

<데카르트의 아기>는 인간이 과연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정의할 수 있는지, 그 본질과 기원을 탐구하는 한 편의 철학적·심리학적 여정이다. AI 시대에 접어들며 ‘인간 정신’의 독특성과 고유성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질문에 답을 시도하는 이 책은 인간다움에 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하며,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이집트 유물이 눈물 흘린다…관리 부실이 부른 루브르의 '대참사'

 세계 최고 박물관이라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의 명성에 또다시 먹칠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1,500억 원 상당의 보석 도난 사건으로 체면을 구긴 데 이어, 이번에는 박물관 내부의 누수로 인해 고대 이집트 관련 중요 도서 수백 권이 물에 젖어 손상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현지시간 7일, 지난달 말 박물관의 이집트 유물 부서에서 누수가 발견되었으며, 이로 인해 서가에 보관 중이던 도서 300~400권이 물에 젖는 피해를 입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루브르의 총체적 관리 부실 문제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린 충격적인 사건이다.루브르 측은 사태를 축소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프랑시 스탱보크 루브르 부관리자는 피해를 본 것들이 연구자들을 위한 "이집트학 서적과 과학 문서"라고 설명하며, 대부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자료들이라 "매우 유용하지만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물에 젖은 책들을 건조하고 복원 작업을 거쳐 다시 서가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예술 전문 매체 '라 트리뷴 드 라르'는 박물관의 설명과 달리 이번 누수로 약 400권에 달하는 '희귀 도서'가 피해를 봤다고 보도해, 실제 피해 규모와 가치가 박물관의 발표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물관 측은 노후화된 난방 및 환기 시스템의 밸브가 실수로 열리면서 천장을 통해 물이 스며든 것으로 보고 내부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이번 누수 사고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것이 결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10월, 4인조 괴한이 박물관에 대담하게 침입해 무려 1,499억 원에 달하는 보석 8점을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해 전 세계를 경악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에는 안전상의 문제를 이유로 도자기 전시관인 캄파나 갤러리를 무기한 폐쇄하기로 결정하는 굴욕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보안과 관리 시스템을 자랑해야 할 루브르에서 영화에서나 볼법한 대규모 도난 사건과 어이없는 누수 사고, 안전 문제로 인한 전시관 폐쇄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박물관의 운영 및 관리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결국 보석 도난, 전시관 폐쇄, 그리고 이번 누수 사태까지, 최근 루브르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관리 부실'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귀결된다.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박물관이 기본적인 안전 관리와 시설 유지 보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관람객이 찾는 문화의 전당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루브르 박물관이 뼈를 깎는 자성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은 머지않아 조롱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